이것은 기자의 일본 유학 중에 있었던 경험담이다.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문부성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국립대학인 히토츠바시대학대학원으로 학교를 옮겼던 때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봄이면 ‘하나미’라고 부르는 벚꽃놀이가 여기저기서 열린다. 4월초인 입학시즌과 겹치는 벚꽃놀이는 대개 신입생환영회를 겸해서 진행된다.
대부분의 신입생환영회가 그렇듯이,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한국유학생으로는 나를 처음 받아들인 지도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한국에서 왔으니 한국의 전통음악을 소개해 주게.” “저는 사실 한국의 전통음악은 잘 모릅니다.” “아니 한국 학생이 한국의 전통음악을 모르다니….”
지도교수는 딱한 듯이 혀를 찼다.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 사실, 한국에서 고등교육까지 마친 나였지만 특별히 한국음악을 배웠던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끄러운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있는 나에게 지난 21일 밤 한국의 전통음악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 왔다. 경기북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주최하고, 의정부지방검찰청, 의정부시, 포천시, 남양주시, 동두천시, 구리시, 연천군, 가평군, (주)딜리, 대진대학교, 경민대학교 등 경기북부를 대표하는 관계각청과 학교들이 후원하는 ‘제7회 범죄피해자를 위한 사랑나눔 대음악회“가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렸던 것이다.
하지아 명창의 맛깔난 사회로 진행된 이날 음악회는 안숙선 명창의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으로 시작해, 2시간 동안 경기도립국악단의 ‘아리랑’ 연주와 김혜빈의 해금 연주, 이용원의 태평소 연주, 마지막으로 국악관현악과 ‘판놀음’으로 대미를 장식해, 예술의 전당을 빼곡하게 매운 관중들의 갈채를 받았다.
경기도립국악단이 연주한 ‘아리랑 환상곡’은 1976년 북한 작곡가 최성환이 작곡한 곡인데, 원래 서양 관현악을 위한 곡이었다고 한다. 더 정확히는 서양 악기와 북한식 민족 악기가 혼합된 배합관현악단을 위한 곡으로, 이후 해외 오케스트라들이 연주하면서 북한식 저대 등의 악기가 플루트나 피콜로로 대체되는 편곡의 과정을 거쳤지만, 이날 경기도립국악단은 이인원이 편곡한 곡을 연주해 순수한 우리의 전통악기들로만 연주됐다.
특히 밝고 힘찬 기운으로 중심을 잡는 태평소가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뒤 이은 이용원이 태평소로 연주한 ‘베사메무쵸’는 귀에 익은 익숙한 선율을 섹서폰이나 트럼펫이 아닌 우리 고유의 악기만으로도 흥을 돋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하게 해줬다.
한편, 악기소개편에서는 ‘25줄 가야금’이 소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인류가 만들어 낸 악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악기로 여겨지는 하프는 현의 수가 47줄이고, 한 옥타브에 7줄씩으로 온음계적으로 조율이 되지만, ‘25줄 가야금’은 하프 이상의 하모니를 들려줬다.
아울러, 김혜빈의 ‘해금’연주는 겨우 두 줄로 된 찰현악기로 이날 연주된 해금협주곡 ‘추상’은 아직도 귓가에 여운이 남을 정도로 슬플 때는 세상 어느 악기보다도 구슬프고 기쁠 때는 한없이 즐겁고 쾌활한 우리민족 고유의 성향을 잘 나타내줬다.
우리 전통음악에 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커 감에 따라 경기북부지역 주민들에게도 수준 높은 전통음악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의 전통음악에 교감하고 연주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음악에 불어 넣은 기운을 함께 공감해 주는 관객들이 있기에 우리음악의 미래는 밝다. 이제는 기자도 해금이 두 줄이라는 사실 정도는 깨우쳤으니 우리전통음악에 관한 이해도가 높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