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그리고 잊혀가고 있다. 세월이 자본주의 경제논리와 편리함을 동반하여 그동안 우리 곁에 있던 정겨운 것들을 몰아내고 데려가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포천 5일장’일 것이다.
최근 포천 5일장을 찾아봤다. 정겨웠던 골목길 시장이 사라지고 사라지는 가운데 우리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못 느끼는 사이 5일장도 사라지지 않으려고 꽤나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24시간 열려있는 편의점의 편리함을 마다하고 누가 과연 5일 걸러 한 번씩 밖에 열리지 않는 5일장을 찾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5일장은 한산했다. 물론, 포천지역에서 생산되는 각종 채소며 생선, 건어물을 비롯하여 유명하다고 하는 ‘등갈비구이’ 집도 나와 있었다.
시장은 모름지기, 북적북적해야지만 제 맛이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 보면 아는 얼굴 한둘쯤은 만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소주 한잔,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게 되고,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지 침체되고 있는지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알면서도 이제야 슬그머니 실눈으로 되돌아보는 것들도 있지만, 사라져 가는 것들이 흑백의 영상으로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 가운데 세월이 가도 그리운 것들은 가끔 낡은 앨범을 뒤적거리게 하고 잠이 쉬 들지 않는 밤에 몸을 뒤척이게 한다.
시골장터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데는 불과 몇 년이 채 안 걸릴 것이다. 거의 모든 장터문화가 사라지고, 지역경제가 붕괴되고 있다. 그리고 몇몇은 숨 가쁘게 기억을 헤집고 먼지를 털어낸 후 언젠가는 그 앞에 ‘장터자리’라고 기념비를 세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념비는 박제가 된 시간의 유물일 뿐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장터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사라질 더 많은 것들과 힘겨운 동거를 하고 있으며,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들의 목록은 늘어날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기록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이것들을 향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것이나, 그렇다고 그것들이 훗날 그리움으로 고스란히 남지는 않을 것이다. 더러는 아쉬운 표정인 듯 보여도 실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일 뿐 대체로 개선과 개량으로 대체되어 삶의 질이 떨어지거나 향유가 줄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음에도 보존돼야 할 것이 있다. 함부로 뿌리를 뽑아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개발과 발전이 아무 곳에서나 미명일 수는 없다. 어느 아름다운 포구가 그렇고 해안선이 그렇고 나루터가 그렇고 장터가 그렇다. 한번 손을 댔다하면 자국은 깊고 구멍은 커진다. 우리들 가슴에도 숭숭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지킬 것은 확실히 지키고 사라져도 좋은 것은 과감히 걷어내는 것이 선진국의 길이다.
지역경제의 활성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경쟁력이다. 서울의 강남구는 ‘특별자치구’를 요구했다고 한다. ‘자치’를 ‘그들만의 잔치’로 끄집어내려했던 생각은 얼마나 유치한 발상인가. 정작 버려야할 것은 따로 있고 간직해야할 것들도 따로 있다. “손님이 없다, 장사가 안 된다”고 호소하는 5일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특정 지역과 특정 계층의 경제적 풍요와 성장의 결과치만 가지고, 경제성장을 주장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옛날의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라고 했다. 목화솜 타던 이불집 사라지고 서울 와서 늙은 목포댁 재봉틀 소리 사라졌다. 연탄가게도 구멍가게도 사라졌다. 고가도로가 사라지고 육교도 사라졌다. 하지만 내 몸속에는 아직도 포천장에 가려고 힘겹게 걸어 오르던 '오지재 고개' 언덕길의 추억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정겨운 추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포천 5일장’이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 마음에 오늘은 그리운 것들을 향해 카메라의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러댔다. 나만의 낡은 앨범이 되기 전에 함께 스며들 기억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