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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김항진의 미술여행] 올랭피아, 기존미술의 전통과 권위를 비웃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5년 10월 11일
 
↑↑ 김항진 상명대 겸임교수
ⓒ (주)포천신문사 
대개 사람들은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합니다. 현대미술이 즐겨 쓰는 방법 중 하나가 익숙한 것도 낯설게 만드는 것이니 대중들에게 현대미술이 낯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 그럼 현대미술은 그 이전의 미술전통과 결별을 하고 난해하고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는 모험과 도전을 시도하게 되었을까요? 현대미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하려면 19세기 이후 유럽의 시대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현대미술에서 꼭 알아야 할 키워드를 통해 현대미술이 발생한 원인과 배경 그리고 그들의 이룩한 성과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로 다룰 키워드는 바로 “올랭피아”입니다. 올랭피아는 1863년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유화로 역사나 신화를 그리던 아카데미학파에서 벗어나 현실의 여인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기존의 고전파 작품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후 마네는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 <그림설명>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 (주)포천신문사

오늘날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 별로 파격적인 느낌을 받지 않겠지만,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발칵 뒤집어졌다고 합니다. 우선 그림의 주인공이 살롱에 거는 그림에 주로 등장하는 여신이나 님프가 아닌 현실의 매춘부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동양에 비하면 서양미술사에 누드는 많이 나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신이나 요정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즉, 어디까지나 화가는 비현실의 존재를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림 속 여신의 모델 역시 대부분 매춘부였고 관람객이나 그림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림 속 여인들을 여신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에 누드화도 허용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네가 그린 그림은 당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현실의 매춘부를 그린 거라는 걸 인지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이었습니다. 애초에 '올랭피아'라는 제목 자체가 당시엔 매춘부 이름으로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 당시 프랑스는 겉으로는 성에 대해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 대었지만 돈 많은 상류층 남자들이 매춘부를 만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이런 위선적인 사회적 현실을 꼬집어서 그린 그림이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 ‘올랭피아’였습니다. 결국 마네의 올랭피아를 손가락질하고 비난을 퍼부어 대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림 속 여인에게 꽃다발을 보내고 함께 밤을 지새운 바로 그들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표현방식에도 기존의 신고전주의 화법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기법으로 작품을 표현하였습니다. 나체에 대한 의례적인 미화 없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벌거벗은 몸을 그린 것입니다. 그 당시 화가들은 사물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내에서 연출된 명암을 통해 그들이 만들어낸 기법을 동원하여 사물을 최대한 아름답고 돋보이게 그렸습니다.

하지만 <올랭피아>에서 보이는 머리에 달고 있는 꽃과 침대장식 등에서 싸구려 티가 매우 나는데다가, 여신의 누드를 그린 그림에 으레 아기천사들이 꽃을 들고 있는 것과 달리, 이 그림에서는 매우 현실적이게도 (당시 기준으로) 비천한 흑인 하인 여성이 꽃을 들고 있는 등 당시의 고상한 관객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천박한 작품이었습니다. 게다가 발부분에 있는 검은 고양이는 서양에서 '재수없음'의 상징합니다.

우리가 흔히 비속어로 여성의 음부를 조개 같은 것에 비유하는 것처럼 프랑스어로 암고양이를 일컫는 단어 la chatte는 은어로 여성의 성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그림 속 고양이의 꼬리는 꼿꼿히 서 있는데, 일부에서는 그 꼿꼿히 선 꼬리가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표현 방식도 매우 거칩니다. 지금 눈으로 보면 저 정도면 봐줄만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앵그르 등을 비롯한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그리던 여인들의 아름다운 누드와 비교해 보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신고전주의 화가들은 정말 붓질을 여러번 공들여 했다. 붓질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에 반하면 마네의 그림은 붓질도 그대로 보이고, 입체감이나 음영감도 없어 평평한 느낌을 줍니다.

모네는 화가의 관념을 통해 사물의 진실을 드러내지 않고 사물 그대로를 표현하여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올랭피아는 사회에 대한 반항의 메시지이자 회화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르네상스 이후 이룩해 온 400년 서구 회화역사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탄생한 이 작품은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습니다. 연일 사람들이 몰려들어 주먹질을 하고 지팡이로 후려쳐서, 그림 앞에 경호원 3명이 대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가 난 시민들이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작품보다 높게 걸었다고 합니다.

물론 현재는 작품의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고가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누구도 생각하지도 않고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방법을 선택함으로서 기존미술의 권위를 부정하였고 그의 이러한 도전정신은 미술을 풍부하고 자유로운 표현의 세계로 이끄는 모태로 인정받게 됩니다.

김항진 / 상명대 겸임교수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5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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