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시절(이승만 대통령 집권 시절) 많은 아부 공무원과 무능 공무원들의 인품이 국민들을 웃기고 공직자들의 술안주(화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첫째가 경기도지사였다. 이익흥 경기도지사와 이승만 대통령의 낚시터 이야기이다. 퇴계원 비행 기호 연못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를 간 어느 날 낚시를 하던 대통령이 그만 ‘뿡-’ 방귀를 뀌고 말았다. 이때를 놓칠 이익흥 경기도지사가 아니었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그 후, 이익흥 경기도지사에서 내무부 장관으로 승진되었다. 또 경기도 문교사회국장은 한글도 모르는 이모 씨였다. 교사 연수는 물론 공무원 모임에는 단골 훈시를 하였다.
8·15 전 이승만 대통령을 공산당 테러리스트로부터 보호 피신시키려고 상해에서 중경으로 유도 8단의 9척 장신의 항공모함 같은 체구로 이승만 대통령을 등에 업고 1200리 길을 뛰었다. 그래서 이모 국장의 힘으로 대통령의 목숨은 구해졌다.(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에 업힌 이승만 대통령이 물었다.
“자네 소원이 뭐지?” “광복 후, 대한민국 경기도 문교사회 국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모 씨는 8·15 해방 후, 독립된 대한민국의 초대 경기도 문교사회국장(서기관)이 되어 문맹이었지만 무난히 국장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경기도 공무원들은 연수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얘기를 2시간씩 듣고 박수를 쳐야 했으며, 이 국장의 관방 문 앞은 고개를 푹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다녀야만 했다. 필자도 그 연수 강연을 들었던 공무원의 한 사람이었다.
“아! 이 사람들아! 머리에 바를 포마드 머릿기름이 없으면 물 찍고라도 바르고 다녀, 알았지? 아, 지난번 어느 공무원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 방 앞을 고개 빳빳이 들고 지나가길래 그 사람 저- 산골 오지로 발령을 내라고 내가 지시했지…하하” (경기도청 1958년 10월 강당 수원시)
내 고향 포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왜놈 순사(부장)가 8·15 후, 면장을 하고 국회의원 백수 형님이 면장을 해도 아무 불평을 못 했다. 19살 먹은 행정고등고시 합격생이 겨우 수습기간을 마치고 부임하는 곳이 포천이었다. 어느 땐가 19살 사무관 군수는 첫 부임 연설 지시사항을 시달하였다.
“여러분! 나는 직접 지시나 간접 지시보다도 ‘갈시판’에 다 공지사항이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습니다.” “아니, 군수님! ‘갈시판’이 아니라 ‘게시판’이 아닙니까?” “엣끼! 무식한 사람…‘게시판’인지 ‘갈시판’인지도 모르고 내무과장을 해?”
그 이튿날 내무과장은 양평으로 좌천되는 수모를 겪고 군수는 ‘갈시판’군수란 별명을 얻어 가졌다. 포천에서 징수한 세금으로 포천 관내 공무원 월급도 못 주는 가난한 군(3급지)이었으니 유능한 인재가 어찌 기관장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