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육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요약(要約)된다. 하나는 ‘왓 투두(What to do)’이고 다른 하나는 ‘하우 투두(How to do)’이다. ‘하우 투두’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고 ‘왓 투두’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왓 투두는 내용(內容)을 말하는 것이고 하우 투두는 방법(方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 교육에서 보다 더 중점(重點)을 두는 것은 하우 투두 보다 왓 투두이다. 왜냐하면 하우 투두는 현장(現場)에서 실무자들이나 선배들이 가르쳐 주나 왓 투두는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일러주기는 하나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잘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왓 투두는 이론(theory)에 관한 이야기고 하우 투두는 현실(reality)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둘은 같이 가는 것이다. 공존(共存)하는 것이다. 현실 따로 이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론(理論)과 현실(現實)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다.
학습(學習)을 함께 하는 것이다. 학(學)은 배우는 것이고 습(習)은 익히는 것이다. 안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우향 앞으로 가! 좌향 앞으로 가!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실제로 해보면 잘 안 된다. 오(伍)와 열(列)이 안 맞는다. 훈련소에서 제식훈련(諸式訓練)을 반복시키는 이유이다. 반복 또 반복을 통해 몸에 배도록 익히는 것이다.
이론(theory)은 왜 그러냐를 설명하는 것이다. 와이(Why)를 설명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당위성(當爲性)을 설명하는 것이다. 타당성(妥當性)을 설명하는 것이다. 현상(現狀)을 파악하는데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론과 현실 사이에 괴리(乖離)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론은 일반적인 것만 추려서 도출(導出)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real world)은 일반성과 특수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인데 특수성은 빼버리고 일반성만 가지고 설명하려니까 그만큼 갭(gap)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론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강단(講壇)과 실무(實務) 사이에 갭이 생기는 것이다.
이론이 강단에서 얻은 지식(知識)이라면 실무는 몸으로 부디치고 발로 뛰어서 얻은 체험(體驗)이다. 산지식이다. 강단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주로 왓 투두에 집착한다면 실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하우 투두에 집착한다고 할 수 있다.
왓 투두가 원칙을 말하고 당위성을 말한다면 하우 투두는 현실을 말하고 현장을 말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강단의 위치에 있는 리더들은 원칙만 제시해주면 된다. 방향만 정해주고 목표만 설정해주면 된다. 그 다음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 실무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시시콜콜 간섭해서는 안 된다. 현실을 모르고 명분만 따지다 일을 망치기 일수이기 때문이다.
역사(歷史)를 보라. 멀리 갈 것도 없다. 역사드라마를 보라. 징비록(懲毖錄)에서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어찌했는가? 아찔하지 않은가? 최일선에 있는 장수(將帥)가 제일 잘 아는 법이다. 후방에서 명분(名分)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전방의 정세(情勢)를 어찌 알겠는가? 전방은 전방을 지키는 장수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다.
전장(戰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매사가 다 그렇다. 사(私)를 버려야 한다.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당리당략(黨利黨略) 이해득실(利害得失)을 따지지 말고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멸사봉공(滅私奉公) 여부를 묻고 논공행상(論功行賞)을 따져야 한다.
리더나 고위직(高位職)에 있는 사람들은 지침(指針)만 주면 된다. 큰 틀만 잡아주면 된다. 디테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실무자에게 맡기면 된다. 윗선으로 올라갈수록 체가 굵어야 한다. 윗선에 있는 사람이 가는 체를 가지고 흔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곧 쳇구멍이 막혀 아무것도 안 될 것이다. 직분(職分)에 맞는 체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직에 맞는 소임(所任)을 충실하게 다해야 한다. 왓 투두와 하우 투두를 함께 떠올리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