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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석구] 세종과 포천 1편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5년 08월 16일
 
↑↑ 이석구 전 포천문화원 향토사 연구소장, 전 초등학교장
ⓒ (주)포천신문사 
세종은 조선조 태조의 손자요 태종(방원)의 셋째 아들로 조선의 네 번째 왕이다.

세종은 21세(1418년) 때 임금으로 즉위하고 53세(1450년)의 단명으로 사망했지만 재위 32년이란 긴 기간 동안 조선조 초기의 사회 안정과 국력 증강 등 건국의 초석을 다진 성군(聖君)으로 추앙 받고 있는 왕이다.

한글을 비롯한 문화, 예술, 과학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 조선왕조가 500년을 지탱할 수 있는 탄탄한 길을 열어 놓은 임금이다.

세계에서 이름난 황제나 장수, 학자들이 많이 있지만 세종대왕만큼 야심과 지혜로 솔선수범하여 국가를 이끌었던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세종과 포천의 인연>

세종과 포천은 무슨 인연이 있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세종이 포천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지내왔다.

실제로 관심도 없었다. 역사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 백 년 서고에 묻혀 있던 조선왕조실록이 세상에 빛을 보면서 세종과 포천의 인연이 ‘타임머신’으로 우리고장, 내 가까이서 ‘클로즈업’되었다. 설화나 전설도 아니고 ‘리얼’한 진실로 오게 되었다. 참으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세종은 그의 세종실록에서 포천을 사랑하고 포천을 고향처럼 드나들었다. 왕방산, 해룡산에서 사냥도 하고 강무(군사훈련)를 했다. 사냥과 군사훈련을 마치고 환궁하지 못할 때는 구군(驅軍:사냥몰이) 군사와 같이 포천의 매장원이나 영평현의 굴동(掘洞)이란 곳에서 이들 군사와 같이 숙식을 하며 머물렀던 기록이 그의 재임 중 90회 가까이 이르고 있다.

군사훈련과 사냥을 할 때는 구군(驅軍)이 2000명이 넘을 때도 있었고 세종이 직접 활을 쏘아 잡은 노루나 멧돼지 등을 상왕(上王)이 계신 곳으로 보내기도 하고 훈련하는 군사에게 시상품으로 하사하기도 하였다.

<세종의 사냥터>

세종은 포천을 고향의 내 집 다니듯 다녀갔다. 세종은 어가를 이용하여 포천을 넘어 왔고 말을 타고 장수들을 이끌고 사냥 나오고 그들과 같이 군사훈련을 했다.

세종왕의 이 군사행렬은 평화로운 시절이라고는 하나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좁은 길에 2000명 군사들이 길게 늘어서 행진했을 것이고 사냥할 때는 산의 중간 지점을 기점으로 하여 위에서 몰고 아래에서 쫓고 함성을 지르며 사냥 했을 것이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세종은 활의 시위를 당기며 쫓겨 가는 짐승을 명중했을 것이다. 사냥은 곧 체력 단련이며 짐승몰이를 군사훈련과 연계하여 군사력을 기르고 고구려 때 잃은 땅을 되찾고자 전쟁 준비를 하고 침략에 대비하였을 것이다. <2편 계속>

이석구 / 전 포천문화원 향토사 연구소장, 전 초등학교장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5년 0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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