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犧牲)하면 먼저 떠오르는 말이 희생양(犧牲羊)이란 말이다.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뜻글에서 희(犧)는 우(牛)와 희(羲)가 더해진 글자로 ‘산 제물인 소’의 뜻을 나타낸다. 생(牲)은 우(牛)와 생(生)이 더해진 글자로 산 채로 신(神)에게 바치는 가축 곧 ‘산 제물’을 뜻한다. 기를 때는 축(畜)이라 하고 제사(祭祀)에 쓸 때는 생(牲)이라고 한다.
종묘제례(宗廟祭禮) 같은 대제(大祭)에서 가축(家畜)으로 보통 소[牛]를 사용하는데 양(羊)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그래서 희생양(犧牲羊)이란 말이 굳어졌다. 희생양은 제사에 소 대신 양이 바쳐진 것처럼 남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힘써 일하거나 죽는 것을 의미한다.
희생이 바치는 것처럼 봉사(奉仕)도 바치는 것이다. 그런데 격(格)이 다르다. 희생은 몸을 바치는 것이고 봉사는 일을 바치는 것이다. 노력을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근로봉사(勤勞奉仕)라 하는 것이고 노력봉사(勞力奉仕)라 하는 것이다.
요즘은 봉사라는 말 대신 기브(give)라는 말을 사용해 ‘재능(才能)기브’라고도 한다. 몸을 움직여 봉사하는 대신 기술(技術)이나 전문지식(專門知識)을 활용하여 봉사한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노력봉사든 재능기브든 모두 남을 위해 하는 것이다. 타인(他人)을 위해 하는 것이다. 조건 없이 주는 것이고 계산 없이 바치는 것이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조건 없이 준다. 아니 바친다. 그래서 자식들을 위해서 평생(平生)을 바쳤다고 말하고 일생을 희생하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려서는 모른다. 그 의미를 모른다. 장성(長成)해서 시집, 장가가고 아이를 키워봐야 안다. 그때 가서야 보모님을 생각한다. 부모님의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 부모님의 희생이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된다. 체감(體感)으로 느낀다.
부모님들뿐만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삶 또한 어떠한가! 독립을 위해 몸 바치신 분들의 삶이 얼마나 숭고(崇高)하고 거룩한가! 그들을 받들어 모셔야 하는 이유이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어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자원봉사(自願奉仕)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나서는 것이다. 타인(他人)을 위해 스스로 나서는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 나서는 것이다. 예전에는 생소한 말이었으나 요즘에는 일상어(日常語)가 되었다. 외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참여(參與)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형의 국제행사나 지방행사에 스스로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우리 사회를 맑고 밝게 한다. 그들의 헌신적(獻身的)인 노력이 행사를 더욱 빛나게 한다. 대가없는 그들의 참여가 나라의 격(格)을 한층 더 드높여준다. 그들의 선행(善行)이 당사자들의 심금(心琴)을 울린다.
물론 희생이 상위개념(上位槪念)이다. 몸을 바치기 때문이다. 명(命)을 바치기 때문이다. 명은 한번 바치면 그만이다. 명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봉사는 아니다. 봉사는 여러 번 바칠 수 있다. 봉사는 다회적(多回的)인 것이고 희생은 단회적(單回的)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뿐인 명을 누가 선뜻 바치려 하겠는가? 그래서 숭고하다고 하는 것이고 거룩하다고 하는 것이다. 멸사봉공(滅私奉公) 또한 성스럽다.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앞세우기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멸사봉공해야 한다. 특히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멸사봉공해야 한다. 희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멸사봉공은 해야 한다.
공수신퇴(功遂身退) 생이불유(生而不有)라는 경구(警句)를 생각한다. ‘공로를 세우되 출세에 연연하지 말라’, ‘명예나 지위가 생겨도 자신의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교훈(敎訓)이다.
가르침이다. “반듯해도 남을 해치지 않고(方而不割), 청렴하되 남에게 상처 입히지 않으며(廉而不劇), 곧아도 교만치 아니하고(直而不肆),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는다(光而不燿)” 도덕경(道德經) 21장의 말이다. 모두가 새겨들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