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득공(柳得恭:1749∼1807)은 조선시대 후기 정조 때의 실학자이고 문신이며 시인이었다. 그가 지은 저서로 보아 흔히 역사가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한시를 잘 지은 문인으로 더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특히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와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한시 4대가로 중국의 청나라까지 이름이 알려져 문명을 떨치기도 했으니 그의 문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고, 서자의 신분으로 초대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검서관이라는 직책은 서적의 편찬이나 교정과 포쇄 등의 일을 하는 직책으로 그 업무가 과중하기는 했지만, 새롭고 희귀한 책들을 접할 수 있었기에 본인의 학문의 깊이를 높여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류득공은 여기서 역사와 지리에 관한 여러 가지 책들을 섭렵하여 고대사를 새로 정립하면서 발해에 대한 역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궁중에 비장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일본의 사료까지도 읽을 기회를 많이 가졌기에, 이런 저런 역사서를 읽고 그는 "고려시대의 역사가들이 통일신라를 남조로, 발해를 북조로 하는 국사체계를 세우지 않았던 것이 영원히 옛 땅을 되찾는 명분을 잃게 되었다."라며 발해사가 국사에서 제외된 것에 한탄하기도 했다.
이렇게 평소 조선과 중국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사료를 습득한 그였기에, 1784년 그의 나이 37세가 되던 해 윤3월에 드디어 우리역사상 최초로 남북국 시대를 알리면서 발해사를 한국사로 인식한 『발해고(渤海考)』라는 역사서를 저술하게 되었다.
류득공의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자(字)는 혜보(惠甫), 호는 영재(泠齋), 고운거사 (古芸居士), 은휘당(恩暉堂)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일찍이 생원시와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지방관으로 파견된 것은 정조 9년(1785) 12월에 포천현감으로 임명된 것이 목민관으로의 첫 시작이었는데 이때가 그의 나이 38세였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서얼의 신분이었는데 그 이유는 증조부인 유삼익(柳三益)과 외할아버지 홍이석(洪以錫)이 서자였고 그의 할머니 우계이씨 역시 이서우의 서녀였기에 그러했지만 류득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암기력에 능하였다.
좋은 시를 짓기 위해 여러 책을 읽었고 훌륭한 시를 짓기 위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문학작품들을 섭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독서를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의 고전 서적을 다양하게 구해서 독서하였고 구하기 어려운 책은 직접 빌려서 탐독하고 이를 필사본으로 베껴서 자신의 집에 비치해 두고 계속 읽었다.
또한 이슬람, 만주, 몽골, 타타르, 인도,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대만, 일본은 물론, 서양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존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1773년(영조 49년)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영조 때 진사가 되었지만 서얼인 탓에 관직의 제한이 있었기에 출사 대신 지기들을 만나며 학문 연구와 역사 연구에 몰두하였다. 시문과 재주에 능하여 정조의 특별한 지위를 얻은 계기로 신분제약에서 벗어나 관직을 두루 역임할 수 있었다.
그가 포천현감을 할 때에 지은 「출재포천작(出宰抱川作)」라는 시에는 포천 현감에 재직하게 됨을 감사하고, 정성을 다하여 선정을 베풀 것을 다짐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일찍이 문단(文壇)에서 노닐다가, 과분하게도 어진 임금의 성은(聖恩)을 입어, 적현(赤縣)의 현감에 봉직되었네. 수레를 타고 동대문을 지날 적에, 궁궐이 하염없이 그리웠네. 보이는 산천은 역력하지만 산천은 아득히 멀어지고, 마부는 쉬었다 달리기를 계속했네. 백성과 사직(社稷)의 중함을 명심하나, 저 많은 송사와 문서에 피곤해지네. 닭을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한 번은 사용할 수 있으니, 난극(鸞棘)은 말해 무엇 하리오."
잃어버린 우리역사 『발해고(渤海考)』를 집필했던 유득공이, 목민관으로 첫 부임지 포천에서 펼쳤던 애민정신은, 약자의 편에서 기득권자의 습성을 원칙에 의해 다스리려 몸부림친 과감한 모범이기도 했다.
그러니 지역을 대표하는 대표들과 공직자들은 그의 애민정신을 본받아, 교만과 허황됨을 버리고 서민을 위한 깨끗한 행정을 펼쳐서 민초들의 어려운 삶을 어루만져서, 우리역사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여, 무엇이 나라를 사랑하는 행위인가를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