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8년 병자년 청나라 군사한테 포위당한 남한산성에서 무능한 임금 인조의 어전회의는 이러했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이렇게 아뢴다.
"사람치고 죽지 않는 사람이 없고, 나라치고 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으니, 죽기를 각오하고 한바탕 싸우다가 사직을 위해 목숨을 바칠 뿐입니다, 어찌 짐승 같은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어 만고의 치욕을 부르겠습니까?"
이렇게 외치며 적군에 보낼 화의 국서를 찢어 버린다. 국가와 백성을 구해낼 지혜가 없고, 계책이 없는 무능해 보이는 신하다. 충성심만 있고 지혜가 부족하다. 백성들은 못난 임금과 무능한 신하들 때문에 모두 죽어야 한단 말인가. 신하는 자기가 죽어서 백성과 임금을 구해야 하는데 그럴 능력이 없으면 벼슬을 살지 않았어야 했다.
또한 신하가 있었으니, 이조판서 최명길이었다.
그는 김상헌이 찢어버린 조각난 항복문서를 주워서 눈물로 붙이면서 통회하며 이렇게 진언한다.
"이미 우리 군사는 대항할 힘이 없고, 화친할 수도 없다면, 스스로 멸망을 재촉할 따름입니다, 조정의 여러 신하는 화친을 물리치는 것만이 옳고 깨끗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신은 악역을 무릅쓰고 적과의 강화를 주청 하옵니다.라고 외치며 통곡한다.
이를 보고 조선왕조의 선비정신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치욕의 항복문서를 찢는 사람도 없어서는 안되고, 도로 줍는 사람도 없어서는 안된다" 고 당시의 세평을 전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살아가는 지혜라면 현재의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보자.
핵을 가지고 위협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급박한 현 상황과,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정치권이 친박이니 비박이니, 친노니 비노니 하며 싸워야 하겠는가. 국가 안보는 생각지 않고 국정원을 적이 알도록 공개해야 하겠는가.
국민의 뜻은 아랑곳 없이 국회의원 수를 400명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국민을 위한 것인가 정치권을 위한 것인가, 국민들은 200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안철수 의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이 뜻을 국민투표에 붙힐 용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이들이 김상헌과 최명길처럼 주장과 방법은 달라도 오직 국가와 백성을 위한 충성심에서 싸우는 것인가. 국민이 보기에는 정치권의 뇌리에 나라와 백성이 있는가를 백성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당리당략만 보인다.
뒷 날 청나라 감옥에 나란히 갇히게 된 김상헌은 옆방의 최명길이 나라 팔아먹는 간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이런 시 한편을 보낸다.
"이제야 우리의 정리를 되찾고 드디어 백 년 의심이 풀렸소" 하니.
최명길 또한 김상헌이 허명을 탐하는 썩은 선비가 아님을 알고 이렇게 화답한다.
"그대 마음 돌과 같아 끝내 돌리기 어려우나, 내 길은 고리 같으니 진정 따를 수밖에 없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