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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철의 건축스케치 기행] 창덕궁


윤희철 기자 / hcyoon@daejin.ac.kr입력 : 2015년 07월 26일
 
↑↑ 윤희철 대진대 건축공학과 교수, 포천신문 칼럼위원
ⓒ (주)포천신문사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 위치한 창덕궁은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창경궁과 함께 동궐(東闕)이라 불려 왔다.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에 이어 조선시대 두 번째로 세워진 이 궁궐은 조선 초기부터 여러 임금이 법궁인 경복궁을 기피하여 이곳을 찾았고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868년 재건될 때까지 조선의 임금들이 거처하는 실질적인 정궁의 역할을 해 왔다.

북한산과 매봉산의 산줄기 끝자락 14만 5천여 평의 부지위에 자리잡은 이 창덕궁은 크게 인정전과 선정전을 중심으로 한 치조(治朝) 영역, 희정당과 대조전을 중심으로 한 침전 영역, 동쪽의 낙선재 영역, 그리고 북쪽 언덕 너머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 (주)포천신문사

우리에게 비원으로 알려져 있는 창덕궁 후원은 한국의 유일한 궁궐후원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광화문 앞에 육조(六曹)거리가 있었다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앞에는 시전행랑(시전상인들의 점포)이 번성했던 곳이다.

조선의 임금들은 돈화문을 나와 이 시전행랑에서 백성들의 삶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되면서 창덕궁, 창경궁, 종묘가 하나의 영역이었던 것을 동서로 가르는 율곡로를 뚫어 창덕궁·창경궁과 종묘를 단절하여 민족의 맥을 끊으려 하였고 돈화문 앞의 왕의 어도도 함께 단절하여 왕실과 백성과의 연결고리마저 끊어버렸다. 겨우 일본식 육교 하나가 창경궁과 종묘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을 뿐이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지난 2011년부터 ‘창경궁·종묘 연결 복원 사업’을 실시하여 율곡로를 지하화하고 그 위에 녹지를 조성하므로써 일제에 의해 끊겼던 민족의 정기를 되찾고자 하는 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창덕궁은 법궁인 경복궁과 달리 자연의 지형을 최대한 살려서 건축을 함으로써 자연스러움이 잘 드러나는 궁궐이다. 특히 후원에서 보여지는 조경과 건축물의 조화는 자연을 대하는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건축물과 각 공간들이 위계가 분명하면서도 자연이라는 요소가 건물의 배치와 건축조형 곳곳에 배어 있는 창덕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답고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는 가장 대표적인 우리 건축의 모습이다.

윤희철 / 대진대 건축공학과 교수, 포천신문 칼럼위원
윤희철 기자 / hcyoon@daejin.ac.kr입력 : 2015년 0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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