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고려·몽고 즉, 여몽 연합군이 몽고군의 고려 침공의 여세(餘勢)를 몰아 해군 함대를 조직해 현해탄을 건너 왜(일본)국을 침공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태풍을 만나 일본 열도에 상륙해 보지도 못하고 그만 물속에 빠져 전멸을 당한다(일본인들은 ‘신의 바람의 도움’이라했다).
그래서 일본은 태평양 전쟁(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년 항공병을 자원 입대 형식으로 끌고 가 요까랭(훈련소)을 거쳐 동남아 전선에 투입했다. 그 특공대 이름이 ‘가미가제 독고다이(신의바람, 신풍 특공대)’이다.
가미가제 독고다이 가슴 안쪽에는 1000명의 이웃들이 한 땀 한 땀 실로 엮은 ‘무운장구(武運長久)’란 글자가 새겨 지거나 ‘신풍(神風)’이란 글씨가 새겨져 충성의 마음을 엮어 보냈으며 초등학교에서는 장차 입고할 요까랭 노래를 매일 아침 목청 높여 불렀으며 4학년 이상은 목검으로 검도 연습을 하기도 하고 해군 소년대를 조직, 해군모자(수병모)를 쓰고 수병 기초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최초로 가미가제 독고다이에 입대하여 전사한 필리핀 ‘레이테 만에서’의 주인공은 19세의 중3 나이로 입대, 23세 미군함의 굴뚝에 꽂혀 미군함을 격침시킨 인재웅(印在雄), 일본명 마쓰이 히데오였는데 개성공립상업학교 학생이었다.
1944년 11월 24일이 공격일 이었는데 당시 1944년 12월 9일자 매일신문은 시인 서정주의 ‘찬미가’를 실었다(「송도」지 156호 재인용).
마쓰이 고쪼(송정 오장(松井 伍長)의 죽음과 서정주의 찬미가(讚美歌)) 아! 레이테 만은 어데련가 언덕도 산도 보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아! 아! 레이테 만은 여기서 몇 만리인가? (2절 생략)
서정주 신인의 애틋한 애국의 마음과 레이테 만의 가미가제 독고다이 영웅 마쓰이 고쪼를 향한 그리움과 조의(弔意)가 레이테 만의 그림움으로 승화(昇華)된 느낌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일본군 소년병 출신 오장(하사)의 죽음을 노래한 시인 서정주는 ‘서구의 악마주의 문학’에 빠졌던 시기에 이 시를 쓰고 왜놈들에게 충성심을 보였던게 아닐까?
내 고향 포천에는 일제 말기(44~45) 최모씨 아들, 유모씨 아들, 함모씨 아들 등이 태평양 전쟁에 입대하였으나, 가미가제 독고다이로 지원입대 하였는지는 그 사실이 분명치 않다. ‘지원병(시강헤이) 만세’, ‘무운장구’란 깃발이 집집마다 나부끼고 그들 친일파들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살았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한반도 지식층인 ‘이광수(소설가)’씨 등이 포천의 초등학교를 순회하며 어울리지도 않는 신라 화랑 ‘관창’을 예로 들먹이며 소년병 모집 권유 강연을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