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공포로 나라가 공황상태에 빠졌다. 어제 오전에 서울대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왔는데 환자들이 확연히 줄어든 게 눈에 띄었다. 의사가 “메르스 때문에 난리인데 용감하게 오셨네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치료 예약을 지킬까 말까 주저하다가 ‘약속한 것이니 가야지’ 하고 진료를 받은 것이다. 도로에 차들마저 줄었는지 서울 시내 도로도 막힘이 없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기울어진 운동장 탓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국가적 위급 상황을 엉뚱한 불평으로 연결시킨다고 비난할 분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위해서 이런 지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글을 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야당이 우리의 편향된 정치지형에 불만을 토할 때 동원하는 용어이다. 야당이 궁색한 자신들의 형편을 변호하기 위한 만든 조어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만은 않는다. 우리의 언론 환경이 너무 편향된 지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 지형은 다들 알다시피 보수 매체들이 장악하다시피 한 실정이다. 이른바 조·중·동은 2000년대에 60-70%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는데 지금은 뚜렷한 조사 기록이 나와 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지금도 절반 이상의 점유율은 확실히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 3사는 막강한 자본 동원력에 힘입어 종편을 소유하고 있다(종편에서 JTBC는 빼야할지 모르겠다. 손석희씨가 보도부문 사장을 맡아 강력한 진보적 성향을 보이니까). 이들 종편을 시청한 분들이라면 다 알고 계실 일이지만 이들 보도 프로그램의 편향성은 노골적이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와의 오찬 녹취 내용을 새정치민주연합 측에 건넨 한국일보 기자를 두고 TV조선의 한 앵커가 ‘쓰레기’라 불러 방송통신심의위로부터 권고처분을 받았는가 하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집회참가자를 향해 ‘친북’, ‘국가 파괴 세력’이라 지칭해 역시 권고처분을 받기도 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보수적 논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언어의 금도는 지켜야 하고 무엇보다 공정성, 균형감각은 언론이 지녀야 할 원론적 자질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이슈가 생기면 이들의 논조는 여당을 은근히 감싸고 야당에 가혹하다.
가령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국군사이버 사령부의 대선 개입 사건 등을 야당이 저질렀을 경우 어땠을까? 아마도 선거를 새로 하라거나 탄핵 발의 제안이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조선일보의 양상훈 논설위원은 댓글 논란이 한창이던 때 다음과 같은 칼럼(2013.10.23.)을 썼다.
“국정원 직원 몇 명, 몇 십 명이 달았다는 댓글이나 트위터 글은 다 합쳐도 인터넷 바다에 떨어진 물방울 몇 개에 불과한 것이다. 그 물방울 몇 개가 사회 전체를 쓸고 가는 강물을 만들어낼 수도 없고, 실제 만든 것도 없다. 몇 명, 몇 십 명이 골방에서 또닥거린 댓글 따위로 인구 5000만 명 나라의 대선 결과가 달라졌다면 세계 역사에 남을 기적일 것이다.”
결국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으로 결판난 이 사건에 대해 그 결과도 나오기 전에 이런 글을 쓴 것은 청맹과니적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서 그는 올초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시민이 동조하고 나오자 “민주사회의 한 토대인 언론에 대해 이토록 많은 사람이 반감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2015.3.12.)고 썼는데 자신의 위상과 행위에 이토록 무반성적 언론인이 있을 수 있는지 아연할 따름이다.
내가 보수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는 것은 이러한 지점이다. 보수 언론들의 보수 정권 편들기가 워낙 일방적이다 보니 공정한 여론 형성, 사회 정의의 유지가 위험스러울 지경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지난 번 세월호 사태 때에도 정부의 무능한 대처와 국가 시스템의 문제가 지적되었지만 메르스가 온 국민을 공황상태에 빠지게 만든 지금에도 정부의 대처와 대통령의 자세는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언론들의 대통령에 대한 질책이 빗발치자 어제야(6.5) 대통령은 병원을 찾았다. 그것도 묘하게도 조선일보가 주문하자 그랬다. 이처럼 정·언 유착지경에 이르러 있으니 계속된 인사실패, 가라앉은 경제, 대형사고 등 이 정부가 제대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정권은 사태가 지나면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태평하게 굴러가고 국정의 견제 제력인 야당은 지리멸렬이 되어(물론 야당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나라는 한쪽 수레바퀴가 덜거덕 거리는 채로 경사로를 위험하게 굴러간다. 이것이 내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문제 삼는 이유이다.
나는 조선일보의 문화, 국제, 정보 면들의 창의적이고 앞선 보도를 높이 평가하고 사랑한다. 그것이 내가 한때 조선일보에 졸필이나마 기고했던 이유이다. 그러나 그러한 창의성, 첨예성, 진취성 등이 정치적인 문제에 이르면 거의 증발되어 버린다. 물론 조선일보에도 강천석, 송희영, 최보식, 강경희, 박은주 등 내가 감히 평가할 수 없는 대쪽 같고 날카로운 기자들이 많다. 이런 건강한 보수파들이 많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 그리고 이런 기자들이 힘을 얻도록 하는 것은 우리 시민들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