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아들과 며느리의 큰절을 아내 없이 혼자 받고 있자니 슬퍼졌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조반을 마치고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처의 산소에 가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고 인사를 올렸다. 실업자인 아들이 결혼을 하니 가정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 커졌다. 아들은 여기저기에서 일을 했지만 모든 것이 힘들었다. 아들이 인력시장을 전전하는 동안 며느리는 한 달의 20여일을 친정에서 보냈고 안정적인 생활은 불가능 했다.
시간이 흘러 추석 명절이 돌아왔다. 추석날 아침에는 아들과 며느리가 아내의 제사상을 준비하느라 새벽부터 분주했다. 그런데 내 방에서 잠시 들여다보니 아들과 며느리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아들이 며느리에게 음식을 제대로 못한다고 야단을 치니 싸움으로 번졌고 며느리는 울면서 밖으로 나갔는데 훌쩍, 훌쩍 우는 며느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심정이 안타까웠다.
내 신세가 어찌하여 몸도 망가지고 처도 세상을 먼저 간 것인지, 매일같이 원망하지만 나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울면서 나가는 며느리를 달랬다. 아들에게는 야단을 치면서 혼을 냈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되었다. 몸서리치게 추웠지만 보일러를 땔 기름이 없어서 매일 외출로 맞춰 놓고 생활했다. 두꺼운 내복을 입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도록 아들 내외가 일산 처가에서 반찬 등 모든 것에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서로 사랑하고 협조하면서 사는 것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감사기도를 올렸다.
개나리, 진달래 피는 봄이 돌아왔고 장애인의 마음도 꽃향기에 취해 봄을 느꼈다, 금년 4월 20일에도 장애인의 날 행사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생각 끝에 지인들을 설득해 조금씩 찬조금을 지원받아서 장애인의 날 행사를 준비했다.
많은 분들의 협조로 준비를 하지만 차량지원에 차질이 생겼다, 전화로 일일이 연락을 하니 모든 분들은 반가운 마음에 참석을 약속했다. 음료수와 막걸리를 제공하신 분, 떡 한말을 약속하신 분 등 많은 찬조로 행사준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감사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20일 아침 마을 서울식당에 나가서 행사 준비 중인 주인에게 모든 것을 잘 치르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던 중에 장애인 분들이 하나둘씩 식당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들어왔다. 나는 거기서 나도 몸이 성하지 않지만 장애인 상호간의 화합과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불굴의 의지로 모든 것을 극복하자며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이날 장애인들은 서로 괴로움과 고독을 함께 나누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즐거운 미소로 서로의 고통을 막걸리 한잔에 담아 나누는 모습에서 진심과 사랑이 넘쳤다. 그리고 아름답고 희망찬 내일을 설계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식사가 끝나고 찬조금 일부가 남아서 의논하여 참석한 장애인 중에서 가장 어려운 3명을 선별해 성금을 전달했다. 서로의 화합의 길로 전진하기를 마음으로 빌면서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힘내시고 건강하게 사시면서 행복과 영광의 날을 찾아 올거라고 말했다.
2003년 6월 중순, 스포츠머리를 한 40대 남자가 나의 이발소를 찾아왔다. 본인을 “포천경찰서에 근무하는 정 경사”라고 소개하면서, “포천경찰서 계장님께서 이곳을 찾아가 인사를 하라는 연락을 받아 정보계 직원으로서 가산을 담당하기에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 경사가 봉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기에 나와 함께 봉사를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하니 쾌히 승낙하며 약속을 하고 커피한잔을 나누고 갔다. 나는 경찰이 봉사를 같이 하자는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우리사회에는 안일한 경찰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정 경사는 진실로 사랑을 나누는 분이었다.
시간은 한 달 정도 지나서 마산 2리 사는 김 노인이 이발소에 왔다. 그 노인은 이발을 하고는 나한테 자신의 딱한 사연을 털어놓았는데, 그 내용을 들어보니 기도원에서 생활을 하다가 나와서 동네에서 살고 있는데 월세 방에 살면서 가전제품이며, 이불이며 살림도 없이 홀몸으로 생활을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불, 식기 등 생필품을 전달하였지만 나조차 힘든 형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때 마침 정 경사 생각이 나서 그에게 딱한 사연을 잔달했다. 그리고는 그 마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아름다운 우정의 친구로서 대화를 나눴다.
어느 날, 하루는 손님도 없고 하여 나의 머리를 염색하고 있는데 정 경사가 트럭에 냉장고, 선풍기, 세탁기 등 중고 가전제품을 싣고 왔다, 나는 마음의 기쁨을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너무 기뻤다. 정 경사가 시간이 없다 하며 나는 얼른 트럭을 타고 김 노인 집으로 향했다.
김 노인에게 선물을 전해줄 생각을 하니 차를 타고 가는 기분은 천국여행보다 더욱 즐겁고 행복해 신바람이 났다. 집에 도착한 후 김 노인을 불러 정 경사와 같이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전달하고 이발소로 돌아왔다.
뜬구름 같이 세월이 흘러 2004년 추운 겨울이 되었다. 함박눈이 온 대지를 흰 동산으로 만들었고 며느리는 만삭이 되어 친정에 가있었고, 나는 아들과 생활하면서 식사를 해결하는 형편이었다.
2월 말이면 할아버지가 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기뻤다. 며느리가 아기를 태어나면 목돈을 준비해야 한다는 친구들 말을 듣고 나에게는 거금인 30만원을 준비하며, 할아버지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드디어 2월 26일, 며느리가 어여쁜 손녀딸을 순산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7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