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총리후보로 지명했다. 그런데 이 나라의 모든 젊은이가 가야하는 국방의 의무인 군대를 역시 못 다녀오셨다 한다. 이 정부에는 떳떳하게 군대 갔다 온 사람이 그렇게도 귀하단 말인가.
왜 우리는 의연하게 군의무를 마치고, 총리직을 잘 수행하고 아쉬움과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총리를 가질 수 없을까.
모든 국민이 다 갔다 온 군대를 못 갔으니 특별히 몸이 약한 국민인가보다. 총리엔 금도끼 총리와 쇠도끼총리가 있다고 한다.
금도끼는 모양은 근사한데 나무를 쪼갤 수 없다. 쇠도끼는 실용성은 있으나 거친게 흠이다. 두 도끼의 장점만 뽑아서 써야 할 터인데 그것도 쉽지 않다.
일본총리로서 성공적으로 큰 업적과 임무를 마치고 물러난 이케다 하야토(油田勇人)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총리는 세 사람의 친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총리를 둘러싼 많은 정치인과 관료 외에 결정적 일 때 도와 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 사람은 높은 경지의 신앙심을 가진 종교인, 한 사람은 넓은 지식의 언론인. 또 한사람은 의술이 뛰어난 의사를 꼽았다.
이케다 총리는 장관시절엔 많은 구설수가 있었다. 국회 질의 답변에서 "가난한 사람은 보리밥을 먹어야 한다", "영세기업이 도산하고 중소기업주가 자살을 해도 할 수 없다"등의 실언으로 국회의 불신임결의를 받기도 했다.
나중에 그 실언들은 거두절미한 과장보도로 들어났지만 그는 언론과 싸우지 않았다. 마음을 다져먹고 저자세로 노력한 끝에 7년 뒤 총리로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총리가 되자마자 관용과 인내의 기치를 내걸고 적대세력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했다. 이케다는 술과 골프를 매우 좋아했으나 총리가 되자마자 재직중엔 요정에도 안가고 골프도 안치겠다고 선언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 콧대 높은 재무관료 출신이었지만 서민적이고 친근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변신에도 세 부류의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우선 고명한 종교인을 통해 일상의 번잡함에서 한걸음 물러나 세상을 관조하고 사심 없이 일처리를 할 수 있는 마음을 얻고자했다.
사실 이케다는 청년시절 난치병에 걸려 붕대를 온몸에 감고 5년여 동안 어머니와 함께 전국 사찰을 순례한적이 있다. 이때 인내를 배우고 잠재력을 키웠다고 한다. 이케다는 그 바쁜 와중에도 일상적 생활리듬과 평상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다음은 견식 있는 언론인을 통해 관청의 보고와는 다른 광범한 여론을 듣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총리취임 후 얼마안돼 여야 공개토론회에서 사회당 당수가 우익청년의 칼에 맞아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 자리엔 총리도 있었다, 일본전체가 술렁대고 내각도 큰 위기를 맞았다. 이때에도 발 빠르게 대처했다. 닷세 후 소집된 임시국회 모두연설에서 눈물겹게 고인을 기리고 애도했다. 추모사가 얼마나 애절했던지 사회당의원들도 눈물을 흘리고 국민들도 감격했다.
들끓던 여론도 가라앉았다. 그것은 언론인 출신의 총리 보좌관의 작품이었다, 그 보좌관은 맹목적의 충성이 아니라 견식있게 보좌함으로서 총리의 직선적 성격을 많이 가라앉혔다. 안 좋은 정보도 꼭 전달했고 직언을 많이 했다.
마지막으로 좋은 의사를 통해 좋은 건강을 유지했다. 총리는 격무다. 건강하지 않으면 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이케다는 주말이면 반드시 휴양지에 가서 좋은 사람들과 같이 쉬면서 보냈다. 의사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물러날 때였다.
총리에게 암 징후가 보이자 의사는 사퇴를 권고했고 총리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마침 그때가 동경올림픽 직전이어서 개회식에 만 참석하고 깨끗이 물러났다.
이케다는 좋은 친구 때문에 큰일도 잘했고 마무리도 잘했다. 황교안 총리 후보도 좋은 친구가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