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 먼 산에는 단풍이 물든 늦가을 모범장애인으로 선정되어 경기도지사 초청으로 오전 11시까지 정장차림의 단정한 복장으로 수원 월드컵 경기장으로 오라는 전화가 면사무소 직원으로부터 걸려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승용차를 타고 수원을 향해 가는 도중 몇 군데 검문소 경찰관들이 나를 보고 경례를 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하였지만 기분은 좋은 편이었다. 기다리던 수원 어느 호텔에 도착을 하였다.
호텔 옆 잔디밭에는 사복차림의 전경들이 완전 포위한 모양으로 호텔주변을 경비하고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호텔을 들어가려는 입구에서 포천 군수님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김대중 대통령 초청 오찬에 초대 받았던 것이다.
호텔 입구에서 모덤 장애인 166번 포천 마크를 단 나는 사복차림의 경관들이 몸수색을 세밀히 받고서, 호텔에 들어서니 앞 로비에는 봉황 그림이 있으니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미리 대통령님 접견 예행연습을 했고 조금 지나니 김대중 대통령님은 이여사님과 등장했다. 일어서서 기립박수로 내외분을 맞으니 뒤에는 도지사와 경제수석 등이 등장했다. 이날 나의 옆자리에는 머리가 흰 사람이 앉아있었다.
드디어 대통령님 내외분이 많은 분들과 악수를 하고 기다리던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생각했던 식사와는 다르게 소박했다. 간단한 나물, 생선, 소고기국, 전 등 밥은 반공기 정도 건배 시간에는 포도주 정도였다. 이어 건배가 이어졌고 호텔 안에는 각 지역 추천인 약 3백여 명 신사들이 참석하여 난생처음 대통령과 식사 시간을 자졌다.
2003년 2월 말경 정호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에 있는데 아들 정호가 나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장가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나는 “무슨 장가냐”고 깜짝 놀라서 아가씨와 데이트 한 것은 알았지만 실업자고 인력시장 나가는 형편에 무슨 장가냐고 했다.
아들 말로는 여자 쪽 어머니가 아버지 모르게 패물을 준비를 했다면서 “몇 일내로 상견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전에 7~8년 동안 사귀던 아가씨와는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헤어졌던 생각을 하니 반갑기도 하고 걱정이 앞섰다.
2월 마지막 주일 의정부 식장에서 상견례를 약속을 하였고, 이런 저런 생각에 뜬 눈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드디어 상견례 날에 송우리 누님과 나와 정호 세 식구는 후배 용준이 승용차 편으로 의정부 한 식당에서 신부 부모와 상견례를 하였다.
신부부친은 우체국 정년퇴직을 하고 지금은 소포박스 납품하는 일을 한다고 하고, 신부모친은 가정을 꾸려가는 현모양처로 보였다. 이런저런 딸과 아들 이야기로 2시간 정도 시간이 흘러 결혼식 날짜를 5월 19일 일요일 오후 1시 50분으로 예약을 했지만 아들은 백수고 나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돈벌이는 시원찮은데 아들의 장가 생각을 하니 낮이나 밤이나 결혼 걱정으로 누구와 의논할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서 결혼 날짜가 임박하였으나 결혼식 날에 입을 양복이 없는 것을 송우리 누님께 이야기를 하니 여의도 아우가 백만 원을 부쳐왔다. 양복은 포천향교전교 이윤우 선배님께 부탁을 해 송우리에 가서 20만 원을 주고 양복 한 벌을 준비할 수 있었다. 청첩장은 3백장을 준비하고 어디로 전할까 걱정했지만, 그런대로 3백장을 모두 보냈다.
결혼 전날이다. 나는 아내의 산소에 찾아가서 하소연을 했다. “여보, 내일이면 사랑하는 아들 정호가 결혼을 한다는데 당신은 여기 누워 있으니 내 맘이 답답하여 당신하시는 주님의 크신 권능과 사랑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내일 결혼식을 올리고 와서 당신께 전하겠소, 이 못난 남편을 용서하시오.”기도를 드리면서 산서를 떠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들과 의정부 낙원예식장에 도착했더니 생각지도 않는 많은 손님으로 식장이 가득 차고 있었다.
결혼식은 오후 1시 50분에 시작됐는데 나는 송우리 누님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정호 처는 연신 눈물만 흘리고 있지만 신랑입장에 새 신랑 정호는 싱글벙글하며 입장하는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언제 철이 들까’ 생각이 들었다. 주례는 현재 포천향교의 전교님이신 이윤우 선배님이 맡아 주셨다. 결혼식이 끝나고 아들 내외가 필리핀과 태국 등 동남아로 신혼여행 떠나는 것을 마중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담스러우실까봐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도 와주신 포천신문 대표님, 아름답고 귀한 말씀으로 주례사를 해주신 이윤우 선배님, 물심양면으로 평소 많은 도움을 주는 가산면 주민, 대전 처남, 일부러 찾아오셔서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6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