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나를 보고 울보라고 놀리면서 억척같이 일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장의 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94년 9월 1일부터 이발 일을 다시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 2명이 찾아와서 이발을 해달라고 했다. 손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정말 억지로 떨리는 손으로 이발을 해주어 8천원을 벌었다.
아내한테 8천원을 벌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는데 그때 학생 부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학생 머리 망쳐놨다고 불벼락 같은 항의 전화였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고 전화에 대고 잘못했다고 내일 고쳐준다고 통사정을 했다. 다음 날 그 학생 머리를 다듬어 주고 나니 떨리는 손과 다리의 통증으로 몸과 마음은 천근만근이 되었다.
그 후로 손님만 오면 마음은 덜컹 내려앉았다.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이발 요금은 반값을 받고, 면도는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몸은 말을 듣지 않으니 가슴은 점점 숱처럼 타들어갔고 하염없는 괴로움에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마비된 몸으로 이발을 하니 손님 머리를 망쳐서 혼도 많이 났고, 보기 안쓰러웠는지 본인이 안타까워서인지 만 원을 그냥 주고 가는 손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돈은 당장 어려운 살림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런대로 세월은 흘러서 아들 경호가 의경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아들이 집을 떠나는 날에 억장이 무너진 심정은 지금도 먹먹하다. 아픔은 뒤로한 채 93년 9월 금현리 집을 처분하고 이발소 주변에 조그만 땅을 구입해 97년 7월 19일 아내와 즐거운 마음으로 입주했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었고 그나마 조그만 행복은 어두운 삶에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서러운 생각 다 묻고 이겨내겠다는 생각에 청소 빗자루를 잘라 지팡이를 만들어 화장실도 다니고 했지만 명원에서는 잘 걸어 다녔는데 집에서는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치료도 못하고 침도 맞지 않으니 몸은 천근만근이 되었다.
힘이 들 때는 쉬면서 찹쌀떡을 꺼내 나누어 먹었는데 옛날이야기하면서 아내는 한 개를 먹고 나에게는 네 개 먹으라고 했다. 그렇게 나를 위하여 아낌없는 모든 것을 주었던 아내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투병생활에 피눈물은 계속되었지만 누구 한 사람 찾아와서 위로하는 사람도 없고 오직 신앙에 힘을 빌려 병마와 싸운 것은 글로 다 옮길 수가 없다. 차라리 하루속히 하늘나라로 가고픈 심정이었다. 어찌하여 이 몹쓸 병에 걸려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너무 원망스러워 눈물만 흘렸다.
1994년 1월 1일 새해 아침 나의 형제들은 우리 집에 모여서 신년을 맞았다. 형과 아우가 위로금을 주고 갔다. 없는 살림에 치료비로 사용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 그런대로 명절을 보내고 추운 엄동설한에 학교 운동장을 밤마다 열 바퀴 이상을 돌았지만 회복의 기미는 없었다.
제대하고 돌아온 아들 정호는 보름 정도 집에서 휴식을 하고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인력시장으로 노동판으로 일을 나갔다. 정호는 밤마다 내 몸을 주무르고 처는 대소변을 받아주면서 고생만 했다.
또한 치료비를 보태겠다고 가산면 방축리 신발공장에 취업을 해 출근했고, 내자에게 너무 고생을 시켜서 미안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아내가 퇴근할 때쯤 1.5km 덜어진 곳까지 마비된 다리를 질질 끌면서 마중을 나가면 내자는 왜 나왔느냐고 야단을 치지만 함께 걸어오는 그 길이 너무도 고마웠다.
하지만 다소나마 안정되어가는 가정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날벼락이 덜어졌다. 그동안 나의 병수발을 하며 가정을 이끌어 오던 사랑하는 아내가 10월 31일 아침 9시 30분 저혈압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아픈 그 심정을 글로 표현할 길이 없다. 쓰러진 아내를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해봐도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내는 영영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노동판에서 생활비를 벌어 보겠다고 나간 정호는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와 목 놓아 대성통곡을 하지만 엄마는 말없이 세상과 이별을 했다.
11월 2일 가전 친지들이 모여 집 근처 있는 공동묘지에서 아내의 상여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장례식장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사랑하는 아들 정호와 이 못난 남편을 버리고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말없이 떠나고 말았다. 장례를 마치고 매일 아침 산소를 찾아가서 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을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사랑할 것을 무덤 앞에 꿇어앉아 눈물로 기도를 올렸다.
처가 살아생전 감을 잘 먹고 좋아했었기에 산소위에 감을 놓아두었더니 가지가 쪼아 먹었다. 마음속으로 까치야 하늘나라에 가서 정호 엄마랑 같이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부르짖는 심정이 쓰리고 아팠다. 그리고는 이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이발봉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