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와중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송병호라는 친구가 93년 7월 14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친구 가정을 방문해 통곡하니 내처지가 더없이 한심스러워 땅을 치며 울고 또 울었다.
매일을 눈물을 흘리다 보니 처는 나를 보고 울보라고 하면서 나를 따라 울기만 했다. 마비된 근육이 제 역할을 하려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비 오는 날에는 비옷을 입고 마음으로는 반드시 떳떳하게 걷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그렇게 죽을 각오로 운동을 나갔다.
183cm 82kg 육중한 몸이 흔들거리는 나의 모습은 너무 초라함 그 자체였다.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마당을 돌다가 문득 농약을 먹고 죽어버리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죽을 기회는 도무지 오지 않고 도저히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한번은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하다 나무를 끌어안고 소리 내어 엉엉 울기도 했다. 그때 뒷산에는 이름 모를 산새들도 소리 내어 나를 따라 우짖는 것 같았다.
마흔아홉의 한창나이에 세상을 떠나려 하니 얼굴에는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하루는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찾아오셔서 기도를 해주셨다. 그리고 목사님께 면담을 했다. “목사님 저는 제 형제가 보고 싶어 죽겠습니다. 헤어져 있어도 볼 수 있도록 기도를 해주십시오”라고 간청을 했다.
그러나 몸이 불구가 된 후 등을 돌린 형제들은 목사님의 기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찾지 않았다. 몸무게 38kg에 가녀린 내자는 사리돈 중독으로 시달리고 있었고, 아들은 강원도에 있는 상지대학교에서 야간을 다니면서 주간에는 화장지 공장에 취업하여 학비를 벌어서 보탰다.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가장의 찢어지는 마음은 오장 육부를 칼로 도려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해다. 그 약한 몸으로 허드렛일을 하여 한 달 50만 원 봉급을 받아 저의 손에 쥐여주는 아내를 보는 나의 심정은 내장을 도려내는 고통이었다.
매일 받는 물리치료는 큰 차도가 없었다. 그러나 아내가 옆에서 지켜주고 있었기에 마비된 다리를 질질 끌면서 아내 어깨에 기대 지하실 물리치료실로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다. 그해 5월 3일 투병생활 중 처음으로 병원 마당으로 나와 태양을 바라보니 태양에 눈이 부시고 어지러웠다.
당시 내 형편에 1주일 50만 원 하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너무 힘에 버거워 병원에서 더 치료를 해야 한다는 원장 선생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5월 18일 퇴원을 하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나의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이러다가 정말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희망은커녕 절망의 세계로 자꾸 빠져드는 나 자신이 너무도 힘들었다. 거기다 비싼 병원비를 감당 못해 동서한방병원에서 퇴원하게 된다.
이때 동생 달재가 나를 승용차로 집에까지 모셔다 준다 하니 그래도 형제가 정말 좋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차 안에서 “형 이제는 형제한테 의지할 생각하지 마”라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당장 차 안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 내 육신이 원망스러워 한숨만 내쉬었다. 수십억의 재산을 소유한 아우지만 돈만 알고 형제를 모르는 아우가 원망스러워 눈물만 흘리면서 할 말을 못하고 집에 도착하니 집안은 차갑고 썰렁했다. 마치 저승에라도 갔다 온 것 같았다.
아우 달재가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형 이젠 형제들한테 의지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하였더니 형님은 큰소리 고함을 지르면서 형제간에 큰 사움만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혈압이 상승하여 금방 죽을 것 만 같았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