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북면 심곡리(깊이울)는 깊은 고을이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왕방산 국사봉(國師峰)에서 발원(發源) 하여 북으로 흘러 영평천으로 흐르는 깊이울 개울(심곡천深谷川)을 막아서 만든 저수지가 ‘깊이울 저수지’인데 ‘깊이울 망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깊이울 저수지는 국사봉에서 흐르는 물을 막아서 만든 방축이어서인지 그 맑기가 거울 같다. 또, 동으로 삼형제봉이 나란히 있어 그 그림자가 깊이울 저수지에 비쳐 아름다운 운치를 더한다. 포천의 어느 척이나 문서에도 자연히 조성된 호수 인양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은 인공(人工)으로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1930년대 말 당시, 한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이던 일제 침략 최고 통치 기관인 조선총독부에 의해 만들어진 ‘심곡 저수지’를 만든 목적은 가난한 포천, 철원, 연천 지방의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노임(勞賃)을 살포할 목적으로 만든 사업이었다.
말하자면 지금의 대형 공공 근로 사업의 하나였던 것이 깊이울 저수지 공사였다. 가산면, 어룡리, 영북면 저수지같이 농업용수를 공급함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심곡리의 논의 규모로 보아 노임을 살포하는데 그 목적을 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일제 침략의 최고 통치기관이었던 조선 총독부 관리들은 왕방산 심곡리에서 돼지, 노루, 꿩 등, 겨울 사냥을 즐겼는데 사냥할 때의 꼭 필요한 ‘몰이꾼(산 짐승을 몰아다 주는 일꾼)’을 동원해 준 신북면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깊이울 저수지를 만들도록 공사를 발주하고 임금을 살포하는 사업을 하였다는 설이 있어 왔다.
호랑이를 비롯한 사나운 짐승들이 많이 살아서 심곡산, 구가봉, 삼 형제 봉 기슭, 큰 골, 닥밭골 등 낮에도 사람들이 산속에서 산 짐승을 본 사람들이 많았으며 실제로 부전 엄마라는 사람은 호랑이에게 뺨을 맞고 왼쪽으로 넘어져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밤이면 늑대, 여우 등 산짐승 우는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깊이울 저수지는 1930년 대 말 무렵 마을 촌장 김충렬 옹과 총감독으로 김장렬 옹이 “깊이울 저수지를 몇 년 공사 끝에 완성하였다.” 전했다.
그런데 1945년 깊이울 저수지가 수해를 만나 둑이 터져서 심곡천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으며 논, 밭을 망쳐 놓기도 하였으나 곧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깊이울 저수지’ 밑에는 ‘꽃봉 수’라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큰 ‘이무기’란 고기가 용이 되어 승천(昇天) 하기를 기다리며 가끔 연못가에 매 어둔 소를 잡아먹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꽃 봉수’는 꽃소식을 전하는 꽃 그림자가 비치는 아름다운 연못인데 그 연못이 맑고 맛나며 매년 이곳에서 3월 3일(삼짇날)과 9월 9일(중량절)에 국사봉 산신령님께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는 미풍약속(美風良俗)이 지금껏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