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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 에세이] 한국 종교계에 절실한 순교 정신


박정근 기자 / jkparkdj@hanmail.net입력 : 2015년 02월 26일
↑↑ 박정근 대진대 교수, 포천신문 칼럼위원회 고문
ⓒ (주)포천신문사
한국의 종교계가 어지럽다. 종교계의 부패가 매스 미디어에 하루가 멀지않게 등장하고 그 내용을 읽어내기 힘들 정도이다. 스님들이 모여서 도박판을 벌였다는 이야기, 모 교회 목회자가 수백억의 퇴직금을 받았다는 소문, 어느 목회자가 아들에게 당회장직을 승계하려고 무리수를 두었다는 이야기, 수많은 사람들이 밥을 굶고 있는데 수천억을 들여 거대한 교회를 지었다고 한탄하는 대화 등등 끝도 없이 들려온다. 급기야 한국 종교계와 세월호의 부정적 밀월관계가 밝혀지면서 온 국민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도대체 보통 시민들보다 더 물질에 사로잡혀 있고 극단적으로 탐욕스러운 성직자들이 어떻게 그들을 구원하겠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요즘 비판을 받고 있는 성직자들의 비리가 보편적으로 모든 종교인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비판을 받을 정도로 빠르게 만연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세월호의 경우를 보더라도 종교계가 아예 돈을 벌기 위해 영리사업에 투자하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관료들과 결탁하여 사회적 재앙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보통 시민들은 종교와 성직자에 대해서 저자세이고 관용적이다. 왜냐하면 종교와 성직자가 그들을 구원할 능력이 있다고 보고 그들은 특별한 존재이고 영적 또는 도덕적으로 한 단계 높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런 공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중세에 유럽을 지배했던 가톨릭의 부패한 제도에 대해 개혁을 부르짖은 성직자와 시민들의 저항이 없었다면 지금의 개신교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루터가 로마 교황청과 결탁한 부패한 성직자들의 면죄부 판매에 대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았다면 수많은 무지몽매한 민중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면죄부를 사는 어리석음을 지속적으로 범했을 것이다.

티 에스 엘리어트는 「대성당의 살인」이란 시극에서 토마스라는 켄터베리 대주교의 순교를 노래하고 있다. 11세기의 유럽은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 종교적으로 지배되고 있었다.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은 결탁하여 시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부패의 고리를 가진 관계였다.

영국 국왕은 토마스를 대주교에 임명하면서 대법관을 겸임하게 하여 왕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활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토마스 대주교는 왕자의 대관에 협조하도록 주교들을 조종하려고 하는 국왕의 의도를 거절한다. 그는 교황의 권위를 무시하려는 국왕의 의사에 반하여 주교들을 파문하고 프랑스로 망명함으로써 국왕의 권위보다 교회의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토마스 대주교는 7년간의 망명 생활 후 국왕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영적 갈증을 느끼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왕당파의 살해 위협보다 신도들의 구원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고 결심한다. 그의 종교적 목적을 수행하려면 정치적 배신에 대한 응징을 하려고 하는 왕당파들에게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토마스는 인식하고 있다.

그는 속인이 추구하는 물질과 권력의 유혹을 물리치고 영적 가치만이 성직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끝까지 고수한다.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만이 정치권력의 독선과 위협, 회유를 물리칠 수 있으며 그를 영원히 역사에 남는 순교자로서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 종교에서 보여주고 있는 지나친 물질추구와 종교관료화는 이미 도를 넘었다고 본다. 샤마니즘적 종교성을 지니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이차돈과 김대건의 순교 행위가 없었다면 지금의 불교와 기독교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자명하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부패와 비리가 만연되고 있는 한국의 종교계에 성직자들의 순교자적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시민들 또한 종교의 비정상적 현상에 대해서 순응적 태도를 취하면 종교계의 정화를 획득할 수 없다. 혼탁한 종교계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는 자는 면죄부를 사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무지몽매한 중세 민중과 다를 바 없다. 거대한 가톨릭의 부패에 대해 루터가 외롭게 저항을 했듯이 용감하게 비판을 가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첩경일 것이다.

박정근 / 대진대 교수, 월더니스문학 발행인, 포천신문 칼럼위원회 고문
박정근 기자 / jkparkdj@hanmail.net입력 : 2015년 0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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