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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칼럼] 사람 잡는 지록위마(指鹿爲馬)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4년 12월 29일
↑↑ 이희용 철학박사,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해마다 12월에 교수신문에서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가 선정되었다. 이는 올 한 해 동안 우리 사회에는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선정의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을 들라면 누구나 진시황제를 거론한다. 나이 39세에 어지러운 천하를 통일하고 스스로 칭호를 왕에서 황제로 진(秦)나라의 제31대의 왕으로 등극한 그의 본명은 영정(嬴政)이다. 천하를 통일시키고 스스로 자신의 칭호를 황제로 고쳐 부르게 하여 일반인에게는 진시황제(秦始皇帝)로 더 알려져 있다.

그의 출생에 관한 내력은 그리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그는 조(趙)나라에 볼모로 잡혀있던 진나라의 후에 장양왕으로 불렀던 공자 영자초와 부인 조희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희는 조나라 수도 한단의 기생이었고 전국시대의 거상 여불위의 애첩이기도 했다. 여불위는 수완과 안목이 남달리 뛰어나서 차기 진나라의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에 가장 높은 영자초에게 모든 것을 걸었는데 심지어는 자신의 여인인 조희마저 바쳤던 것이다.

사마천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조희는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으나, 여불위가 이를 숨기고 정치적 목적에서 영자초의 아내로 만들었다. 그 후에 영자초는 여불위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오고, 이때 소양왕이 나이가 많아 태자 안국군에게 왕위를 물리려 하였는데 그에게 아들이 없자 여불위가 영자초를 양자로 들여보냈다.

훗날 영자초는 왕위에 올라 장양왕이 되었으며, 그 공으로 여불위는 진나라 승상의 자리에 올라 계획대로 영정(진시황)은 곧 태자에 책봉된다. 3년 뒤에 장양왕이 죽고 영정은 13세의 어린 나이로 진나라의 제31대 왕에 즉위하였다.

영정이 너무 이른 나이에 보위에 오르자 승상 여불위가 섭정을 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음껏 휘둘렀으며, 심지어는 과거 자신의 첩실이었던 모후(母后) 조희와 다시 각별한 사이로 지내고, 이 같은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웠던 여불위는 노애라는 자신의 수하를 환관으로 꾸며 조희의 처소로 보낸다.

여불위가 계획한대로 노애와 조희 사이에 두 명의 자식이 생기고, 그들은 영정의 눈을 피해 수도인 함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지만, 이를 알게 된 영정은 모반을 일으킨 노애를 능지처참하며 두 아들마저 죽이고, 어머니인 조희를 감금시키고는 이일을 꾸민 여불위를 자결하게 한다.

영정은 새로운 승상 이사를 옆에 두고 친정을 하여, 진나라의 모든 군사를 총동원하여 중국 대륙의 통일작업을 시작했다. 가장 쇠약했던 한나라를 필두로 위나라ㆍ초나라ㆍ연나라ㆍ조나라ㆍ제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BC 221년, 마침내 거대한 중국 대륙을 통일시킨다.

그 후에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선비들이 있다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서, 의약ㆍ복서ㆍ종수(농업)에 관한 책과 진나라 역사서 외에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버리게 되는데, 관청에 제출된 희귀한 책들이 불태우는데 이를 ‘분서(焚書)’라고 한다. 또한 그를 비판하던 선비 수백 명을 모두 생매장시켰는데, 이 일을 가리켜 ‘갱유(坑儒)’라고 한다.

그의 수하에는 조고(趙高)라는 환관이 있었는데, 환관 조고는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고사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주인공이다. 지록위마란,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이르는 말로, 조고가 자신의 권세를 시험하여 보고자 황제 호해에게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서 남을 속이려는 짓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조고는 중국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를 따라 여행하던 중 시황제가 병사하자, 당시의 승상 이사와 짜고 거짓 조서를 꾸며, 시황제의 맏아들 부소와 명장 몽염을 자결하게 만들었다. 또 시황제의 용렬한 막내아들 호해를 시황제를 이은 2세 황제 자리에 앉혀놓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했다. 그리고 황제 호해에게 참소(讒訴)하여 승상 이사를 죽이고 스스로 그 자리에 앉아 횡포와 만행을 저질렀다.

『사기(史記)』에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기록이 있는데, 피로 전권을 장악한 조고는 욕심이 생겨서 신하들 중에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려는 계략으로 허수아비 황제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 말(馬)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러나 황제 호해가 보기에 그것은 사슴이지 분명히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승상은 농담도 잘 하시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指鹿爲馬)…"라고 했다. 이에 대해 환관 조고는 "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말로 보이오?" 라고 강압적이고 비열한 어조로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런 조고의 말에 호해는 웃으며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잠자코 있는 사람보다 긍정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사슴을 말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뒤집어 씌워 죽여 버렸다. 이것이 바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였다’는 데서 비롯된 고사 ‘지록위마’의 유래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본질은 감추고 또 다른 사건으로 커다란 실수를 가리려고 하는 일이나, 문지방 권력에서 벌어지는 사실호도 그리고 대한항공 땅콩회항 등 일연의 일들이, 지록위마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은 진나라 말기를 보고 있는 느낌이라는 논객들이 많다.

그 속에서 우리 포천시는 과연 멀쩡하게 가고 있는 것이지 확인해 보면, 왕에 비유되는 지자체장의 권력남용이나 파렴치한 사생활이 언론에 도배되면서, 이를 지켜보는 시민의 마음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지금 가중되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서민들의 눈에는 피눈물이 나는데,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거꾸로 세상을 가고 있으니 걱정이다. 제발 권력이 있는 자들의 최소한의 염치 있는 행위를 권고하는 바이다.

이 희 용
철학박사, 경북중학교 운영위원장, 한국스카우트경기북부연맹 이사, 전 경기도예총 부회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4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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