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 12월. 청년장교 나폴레옹은 파리 사교계의 꽃인 조세핀에게 사랑이 가득한 편지를 보낸다. "나는 잠에서 깨어 당신만을 생각하고 있소, 지난밤 도취의 열락만이 나의 감각 속에 맴돌고 있소, 정다운 이여, 누구와도 비교 할 수 없는 당신, 도대체 내 마음 속에 어떤 신비한 효력을 불러 넣은 것이요?." 시인들도 표현하기 어려운 뜨거운 사랑의 표현이라 하겠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1796년 3월 9일 두 사람은 결혼한다.나폴레옹은 27세의 총각이었으나 조세핀은 33 세의 두 아이를 둔 과부였다. 나폴레옹의 사나이로서의 사랑의 감정만은 사실이었는지 몰라도 그가 조세핀에게 접근한 배경에는 정략이 숨어 있었다. 자기를 키워 줄 뒷 배경이 없었던 코르시카 출신의 야망이 넘쳤던 청년장교 나폴레옹은 정, 관계의 후원자가 필요 했었다.
그런데 조세핀은 정,관계에 넓은 인맥과 친분을 구가하고 있어서 나폴레옹은 많은 후원과 보호막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세핀은 야심만만한 청년장교 나폴레옹의 청혼을 받고 여러가지로 망설였다. 나폴레옹이 너무 조용하고 여성들을 서투르게 대하는, 약간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사람은 결혼했다.결혼 직후부터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원정군사령관이되어 최전선으로 힘든 출정길을 떠나야 만 했었다. 그리고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라는 오만한 말을 남겼다.남편 나폴레옹이 집에 없는 동안 조세핀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염문을 뿌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폴레옹의 귀에 까지 들어왔다.
나폴레옹이 승리하고 돌아와 조세핀에게 추궁하자 조세핀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의심한다면 우리 이혼해요"라고 야멸차게 대항했다. 나폴레옹도 부하의 아내인 폴린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즐겼다. 이렇게 파국 직전까지 가는 듯하다 가도 다음 순간에는 뜨거운 열정의 말을 늘어놓던 두 사람의 비정상의 결혼생활은 두 사람이 1804년 황제와 황후가 된 후 평온을 찾는 듯 했지만 5년 후인 1809년 파국이 다가온다.
어느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폴레옹 황제는 조세핀 황후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이에는 소생도 없고, 당신이 황태자를 생산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소" 하니. 이 말을 들은 조세핀 황후는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고 황후의 방으로 들어가서 이렇게 외쳤다. "안돼, 나는 견딜 수 없어"라고 절규하며 흐느꼈다. 두 사람은 헤어졌고, 새로운 황후로는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루이즈를 맞이 했다. 5년 뒤인 1814년 봄 나폴레옹은 프랑스로 밀려 들러오는 연합군의 침공으로 대패하여 엘바섬으로 압송된다. 그 해 5월 조세핀은 감기에 걸렸는데 손쓸 틈도 없이 허무하게 죽었다.엘바섬에서 이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2 일간이나 홀로 방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슬퍼했다.
그 후 다시 정권을 잡아 100일 천하를 누린 후, 남태평양의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어, 섬의 총독 허드슨 로에게 갖은 모욕과 조롱을 당하다가 1821년 5월 5일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나폴레옹을 세상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칭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부러워 하지 않는다.
이 글을 잃는 독자들은 권세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현재의 위치에서 우리는 행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