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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칼럼] 비운의 왕 광해군의 파란만장한 생애(2)

- 재위 15년 만에 폐위되는 운명을 맞이하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4년 12월 12일
↑↑ 박관우 역사작가, 칼럼니스트,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의 저자
ⓒ (주)포천신문사
광해군이 즉위한 이후 조정은 그동안 광해군을 지지하였던 대북파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데 그 중심 인물은 이이첨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1613년(광해 5년) 계축옥사(癸丑獄事)가 발생하면서 광해군의 잠재적인 경쟁자였던 영창대군이 강화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1614년(광해 6년) 죽음을 당하고 인목대비의 친정아버지가 되는 김제남도 처형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영창대군 못지 않게 광해군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인목대비도 1618년(광해 10년) 결국 폐위되어 서인으로 강등된 이후 딸인 정명공주와 함께 서궁(西宮)에 유폐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바로 인조반정이 성공한 이후 인목대비가 광해군을 폐위시키는 이유중의 하나로 내세운 폐모살제(廢母殺弟)의 내용이 된다.

광해군 대에 이런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지만 이런 반면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광해군이 보위에 오를 당시에 대북파가 주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남인 출신으로서 선조 대의 우의정으로 명망과 경륜이 높았던 이원익을 영의정에 임명한 것은 당파를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려고 하였던 그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즉위 직후인 1608년(광해 원년) 5월 이원익의 건의를 받아 들여서 경기도에 대동법을 전격적으로 실시한 것이다.

여기서 대동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공물을 현물로 걷는 대신 봄과 가을에 쌀 16말만을 내도록 하고 여타의 비용은 완전히 없앤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동법에 대하여 기득권층의 반발은 심하였지만 결국 경기도에서 시행되었다는 것을 주목한다.
광해군은 이와 함께 서적편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인데, 특히 허준이 의주로 유배간 상황에서도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마침내 1610년(광해 2년) 동의보감이 편찬되었던 점을 통하여 백성들의 건강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광해군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서인세력들이 반정을 일으킨 또 하나의 명분을 주었던 궁궐공사와 관련된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을 말하기 위해서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 가지 않을 수 없는데 왜적의 대대적인 침입으로 말미암아 선조는 결국 도성(都城)을 떠나는 절박한 상황까지 이르고야 마는데 이러한 선조의 결정에 백성들이 격앙된 감정속에서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비롯하여 창덕궁,창경궁을 불태우는 참사가 발생하고야 만다.

한편 의주까지 피신하여 명나라로 망명까지 추진하였던 선조가 결국 도성(都城)을 떠난지 1년 6개월만에 환궁한 이후 월산대군의 사저(私邸)를 임시 행궁으로 사용하다가 임진왜란이 종식된 이후 마침내 1608년(선조 41년) 승하하기에 이른다.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해군이 궁궐이 사라진 한양의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려 왜적의 방화에 의하여 소실된 종묘를 비롯하여 창덕궁과 창경궁을 중건하였다.

아울러 경덕궁을 비롯하여 인경궁과 자수궁을 새로 신축하였으니 이런 것을 통하여 볼 때 광해군이 궁궐공사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궁궐에 대한 공사가 임진왜란으로 무너진 왕실의 권위를 회복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간과할 수 없지만 이로 인하여 백성들이 공사에 동원되고 많은 재정이 투입되는 부작용이 초래되었다는 것인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광해군이 궁궐공사를 추진한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시간이 갈수록 다른 현안을 등한히 하고 궁궐공사에 치중한 점은 잘못된 처신으로 생각한다.

이제 광해군의 정책에 있어서 대표적인 정책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폐위(廢位)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던 외교정책에 대한 부분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광해군이 재위한 기간에는 후금으로부터 어떠한 침략도 받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폐위(廢位)된지 불과 4년만에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였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외교정책이 현명한 정책이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서 1619년(광해 11년) 명나라가 후금을 공격하기 위하여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게 되며, 광해군은 결국 강홍립을 도원수로 하여 1만3천명의 군사를 통솔하게 한다.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상황을 보면서 전세가 불리할 경우 후금에게 투항하라는 밀지(密旨)를 내리게 되는데 이는 명나라의 입장도 존중하면서 동시에 후금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광해군 외교정책의 핵심적인 내용으로서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시한 합리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밀지(密旨)에 근거하여 강홍립은 결국 후금에 투항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며, 이로 인하여 강홍립은 후금에 억류되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본래 친명정책을 고수하고 후금을 오랑캐로 천시하던 서인들의 입장에서는 광해군의 그러한 외교정책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결국 이러한 정책을 구실로 삼아 1623년(인조 1년)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이 재위한지 15년만에 폐위(廢位)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

그가 폐위(廢位)된 이후 가족들의 불행이 시작되는데 광해군을 비롯하여 폐비(廢妃) 유씨와 폐세자 부부가 강화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며, 불행하게도 폐세자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실패로 끝나서 며칠후에 폐세자빈이 자결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며, 그로부터 1개월후에 폐세자도 자결하게 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러한 폐세자의 자결소식을 알게 된 폐비(廢妃)유씨도 그 충격으로 인하여 결국 승하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이와 더불어 광해군의 유일한 딸인 옹주는 외가에서 성장하다가 25세에 음성박씨 문중의 박징원에게 하가(下嫁)하여 2남 3녀를 소생한 이후 1664년(현종 5년) 세상을 떠나며, 광해군의 손녀는 민가에서 궁녀가 기르다가 결국 의성김씨 문중 김문거에게 하가(下嫁)하나 그 이후의 구체적인 행적은 현재 베일에 쌓여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가족들의 이러한 불행속에서도 광해군의 생명력은 끈질지게 유지되어 강화도에서 유배생활을 시작으로 이괄의 난때 태안으로 이배(移配)되었다가 다시 강화도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정묘호란 당시 교동으로 이배(移配)된 이후 다시 병자호란 이후 제주도로 이배(移配)되며, 마침내 1641년(인조 19년) 7월 1일 향년 67세를 일기로 천추(千秋)의 한(恨)을 남긴 채 승하한다.

광해군이 승하한 이후 그의 묘소는 폐비(廢妃) 유씨와 함께 생모 공빈 김씨 묘소 근처에 안장되는데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비록 폐주(廢主)라고는 하나 그 규모가 참으로 초라하다는 점이다.

똑같은 폐주(廢主)인 연산군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대군의 예에 준하는 규모라고 할 수 있는데 비하여 광해군의 묘소는 도저히 대군의 예에 준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없는 점에 비통한 심정 금할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광해군 시리즈를 마치면서 정부에 광해군의 묘소를 왕릉급으로 격상시키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연산군 묘소 규모 정도로 단장(端裝)하여 줄 것을 제안한다.

박관우 / pgu77@naver.com
역사작가, 칼럼니스트,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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