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 이현모는 수도 서울에서 효도 교육으로 유명한 초등학교 교장이었다. 모친은 양주 동두천 걸뫼 경주 김 씨 신라 왕손의 딸로 당시로는 양주 포천 고을이 다 알아주는 명문가(名文家)의 후손이었는데 포천 고을의 명문가 고성이씨(高城李氏)의 종부(宗婦)로 출가(出嫁)를 하신 것이다.
왕족이자 거부(巨富)셨던 한문학자 김성렬(金聲烈) 옹은 지체 높은 고성이씨 포천 명문가로 지참금(持參金)을 크게 안겨 주어 시집을 보냈는데 따님이 갖고 간 그 지참금은 어찌나 많았는지 당시 포천금융조합(지금의 농협)의 우수 조합원이자 최고의 예금주로 조합장실에 사진을 크게 걸어 놓았을 만치 ‘큰 손’ 대접을 받았다 한다.
그러나 고성이씨 명문가의 금두꺼비 장손을 낳는 데에는 여러 번 실패 끝에 드디어 이현모 교장을 출산한 것이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몸소 실천해 장거리로, 학교 근처로 세 번이나 이사(移舍) 끝에 최고의 명문 경기를 마다하고 서울사범학교를 택해 진학시키고 졸업 후 수도 서울의 교장이 되었다.
이현모 교장이 근무하는 학교 운동장에는 ‘효자가 되겠습니다’라는 가로 20m 세로 2m의 구호가 쓰여 있는데 당시 강서구청장의 작품이다. 다른 교장들은 학교 보수공사 부정과 부실로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학교 공사의 효과적인 공사를 KBS- TV에 출연, ‘학교사랑 효도교육’을 역설하여 존경과 인기를 받기도 하였던 수도 서울의 ‘효도교육’ 선구자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옛날 중국 만주지방의 연변 동포 어린이들을 초청, 모국 사랑의 정신과 효도교육을 시키는가 하면 수도 서울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옛 만주벌을 누비던 독립군의 발자취를 답사하며 효도교육의 선구자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면 여러분들은 놀랄 것이다.
“교장선생님! 효자가 되겠습니다” 이현모 교장이 매일같이 듣는 기분 좋은 인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다.
서울교대 총동창회 회장으로 수도 서울의 교사들은 이현모 교장이 손수 가꾼 밤나무 밭에서 매년 가을, 밤도 따고, 효도교육 연수를 받고 돌아간다면, 여러분들은 다시 한 번 놀랄 것이다.
‘염불(念佛)에는 마음이 없고 젯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세상에 이현모 교장은 교사들과 서무 직원들을 이끌고 아껴둔 판공비와 절약한 돈으로 설악산으로 제주도로, 포천 밤나무 밭으로, 연수와 위로 여행을 시켰던 효문(孝文)이었다.
“걸으면서도, 뛰면서도 심지어는 잠자면서 까지도 ‘효자가 되겠습니다’라고 중얼거린다”고 이현모 교장을 모시고 있던 교사들의 말이 생각나, 나는 웃으며 이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