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가요는 그것에 대한 의미나 채록를 염두에 두고 사라져 가는 우리소리를 아쉬워하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이십여 년 전부터 필자는 포천에서 전해오는 소리에 관심을 두면서 포천메나리 속에 온전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새로운 소리를 체험할 수 있었다.
포천메나리 속에는 입산소리가 있다. 그 내용은 농사꾼들이 갈잎을 꺾으러 빈 지게를 지고 산에 오를 때 지겟작대기를 악기삼아 지게 발을 두드리면서 부르던 소리이다. 이 곡조는 얼핏 보기에는 강원도아리랑과 비슷한 것 같지만, 곡조도 다르고 여느 다른 지역의 것과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소리는 산간지역인 포천에서 불려 내려온 고유의 독특함이 있고 이른바 메나리토리조 소리권에서 전해지는 가락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때때로 손가락 정도의 짧고 지공이 없는 호드기로 불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구전민요를 말하라면 누구나 아리랑이라고 한다. 아리랑의 기원은 여러 가지가 설이 있는데 대체로 여음인 '아리랑'의 어원에 그 열쇠가 있다고 본다. ‘아리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대체로 1930년대를 전후한 시기로 보고 있다. ‘아리랑’의 유래를 몇 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리랑(我離娘)'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의 말에서 유래했다다는 설이다. 둘째, 아이농설(我耳聾說)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 할 때 부역으로 고생하던 백성들이 좋은 말은 못 듣고 괴로운 말만 듣게 되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셋째. 아랑전설(阿娘傳說) 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넷째 알영설(閼英說) 신라의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이 변하여 전해진다는 설이 있다.
물론 다른 유래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는 없고 그저 구음(口音)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서 전해진다고 보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우리역사 속에서 아리랑은 다른 민요와 마찬가지로 본래 노동요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구술과 암기에 의한 전승 또는 자연적 습득이라는 민속성과 지역공동체 집단에 의해 이어졌다는 민속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집단적 특징은 시대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랑’의 노랫말 속의 내용이 개인적인 넋두리가 있었을지라도 거기에는 우리민족의 민족사가 반영되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우리민족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던지 생활 속에 깔려 있는 삶의 애환을 ‘아리랑’에 담았고 그것은 직업공동체·사회공동체의 문화적 독자성이 강한 노래였고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한국인 특유의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해 주었던 우리의 가락이었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백성의 고통이나 관리의 가렴주구가 아리랑에 얽혀 있고, 일제 강점기하의 민족적 수난 속에서 끌어 오르는 저항의식에도 ‘아리랑’은 있었다. 우리나라의 3대 아리랑으로는 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밀양아리랑을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정선아리랑’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서를 따라 이러져 내려온 메나리토리권의 민요로서 민요적 전통성과 지역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산간지방 고유의 소리이다. 남북이 분단되어있는 지금 ‘아리랑’은 민족화합의 노래로서 널리 불리고 있는 민족의 소리이다. 강원도와 인접하고 황해도와 교류했던 포천은 우리 나름대로의 숨결이 녹아있는 고유의 소리를 불렀다.
우리소리 중에서 경기도 포천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때 힘들고 무료함을 달래기도 하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던 노동요(勞動謠)가 ‘포천메나리’이다. 2000년 8월에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소리는 농사짓는 과정별로 각기 다른 소리가 있는데, 산에 들어갈 때와 산에서 나올 때 부르는 <나무꾼 소리>, 써레질할 때 부르는 <소몰이>, 모심을 때 부르는 <열소리>, 첫 논맬 때 부르는 <방아타령>, 두벌 논매는 소리인 <메나리>, <담쌓는 소리> <새 쫓는 소리> 등이 있다.
그 가운데 두벌 논맬 때 부르는 ‘메나리’가 중심이 되어, 이런 모든 과정의 소리를 ‘포천 메나리’라 통칭하고 있다. 특징으로는 ‘메기고, 지르고, 받고, 내고, 맺는’ 다섯 조로 역할분담을 해서 부르는 특징이 있어 보존의 가치를 더한다.
하지만 최근에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포천메나리’의 일부 소리가 전형적인 민요소리가 접목되어 고유의 소리가 일부 훼손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 속담에 “지게를 지고 제사를 지내도 제 멋이다”는 말이 있다.
이는 무슨 일을 하던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남이 간섭하든 말든 상관할 바가 없다는 말이다. 그동안 정형화된 소리를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전해지는 소리를 그대로 표현한 바로 그 소리가 제대로 보존되어야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포천메나리를 직접 채록하신 경인교대 김순재 교수님의 생전에 가르침에 의하면, 산속에서 일을 하며 부르던 소리가 메아리로 전해져서 메아리가 메나리로 변하여 정착한 소리이고, 한번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소리는 그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원년부터 포천메나리를 지켜온 이영재 옹을 비롯하여 유태균, 양무성, 이창해, 박일용씨 등 지금은 비록 연로하신 원로들의 순수한 소리를 변형 없이 전수하고 보전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반드시 지켜가야 할 역사적 숙명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고, 관련자들은 무형문화재의 원형 보존의 필요성을 반드시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