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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칼럼] 동의보감의 숨은 공로자 광해군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4년 11월 23일
↑↑ 박관우 역사작가, 칼럼니스트,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의 저자
ⓒ (주)포천신문사
최근에 광해군을 연구하게 된 출발점은 연천에서 의학자로 활동하였던 증조부 박승석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비롯되었다.

증조부 탄생 150주년이 되는 2015년을 앞두고 일제강점기 시대에 종두인허원(種痘認許員) 경기도 대표로 활동하였던 증조부가 어떤 연유에 의하여 두창(痘瘡)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는지 그 연원(淵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포천에서 의관(醫官)으로 활동하면서 박제가와 정약용으로부터 종두법(種痘法)을 전수받은 이종인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종두법(種痘法)을 연구하였던 박제가와 정약용의 의학사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류성룡이 의학변증지남(醫學辨證指南),침구요결(鍼灸要訣) 같은 의서(醫書)를 저술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특히 류성룡은 영의정으로서 임진왜란을 수습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속에서 임진왜란 최대의 격전지가 2차 진주성 전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10만의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국한 수천명의 군인들과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6만명의 백성들도 함께 희생된 비극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에 대한 관심이 왕세자로서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의병을 모집하고 전투를 독려하는 등 전쟁수행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광해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광해군의 행적을 연구하던 중에 동의보감과의 관련성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이상과 같이 증조부의 행적을 조사한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결국 광해군까지 연구하기에 이른 과정을 소개하였다.

그동안 광해군과 관련된 몇편의 칼럼을 기고한 바 있는데 본 칼럼에서는 광해군이 동의보감이 편찬되는데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동의보감은 1596년(선조 29년)에 허준을 비롯하여 정작,이명원,양예수,김응탁,정예남 등이 편찬에 참여하였지만 그 이듬해 발생한 정유재란으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가 전쟁이 종식된 이후 허준이 독자적으로 편찬하여 마침내 1610년(광해 2년)에 총 25권으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동의보감이 완성되는데 있어서 숨은 공로자에 대하여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바로 그 장본인이 광해군이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광해군이 어떤 경위로 동의보감의 숨은 공로자가 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 보기로 하자.

그 시작은 임진왜란중인 1596년(선조 2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에 왕세자로 있던 광해군이 두창(痘瘡)을 앓게 되었으나, 허준이 치료하여 완쾌되었으며, 이러한 공로로 정2품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제수(除授)되었으며, 특히 광해군의 신임을 받아 보위에 오른 이후에도 허준에 대한 광해군의 신임은 변함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1596년(선조 29년)부터 동의보감 편찬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유재란으로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가 1600년(선조 33년)이 되어서야 다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는데 1608년(선조 41년) 선조가 승하하면서 당시 수의(首醫)로 있던 허준이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주로 귀양가게 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선조의 뒤를 이어서 16년동안 왕세자로 있던 광해군이 드디어 보위에 오르면서 의주로 귀양을 가 있던 허준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 진다.

그것은 허준을 평소에 신임하고 있던 광해군이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양중이었던 허준에게 도성출입을 허락하고 내의원의 의서(醫書)를 열람하게 하는 실로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였으니 이런 것을 통하여 허준에 대한 광해군의 신임이 어느 정도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광해군이 이러한 조치를 내린 직접적인 원인은 허준의 탁월한 역량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면 이는 광해군이 평소 의학에 대하여 깊은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광해군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동의보감이 마침내 1610년(광해 2년)에 완성되었는데 동의보감이 광해군 시대에 편찬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며, 군왕으로서 백성들의 건강문제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라고 본다.

그렇다면 광해군이 허준이 귀양중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여 편찬을 계속할 수 있게 배려한 동의보감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 의하여 완성된 것인지 알아 보기로 한다.

동의보감은 임진왜란으로 인한 굶주림과 전염병을 타개하기 위하여 편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전란이 종식될 무렵에 발생하는 질병으로 인하여 의약 전반에 대한 수요는 높아 졌지만 그에 따른 공급은 많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특히 하층계급의 백성들이 의약의 혜택을 보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산 약재 대신에 조선의 약재를 이용하여 의료비를 인하할 수 있었다.

아울러 동의보감을 편찬하는데 있어서 180여종의 서적들을 인용하였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대부분 의서(醫書)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경서(經書),사서(史書),도가서적(道家書籍)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때 허준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탁월한 식견을 가졌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기존의 중국의 의서(醫書)를 대신할 수 있는 조선의 의서(醫書)를 편찬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동양 최고의 의서(醫書)로 추앙(推仰)되었던 동의보감인 것이다.

필자는 광해군이 허준이 귀양중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지원을 하여 동의보감을 편찬하는데 있어서 숨은 역할을 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박관우 / pgu77@naver.com
역사작가, 칼럼니스트,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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