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경기도의 지명은 조선왕조가 시작되면서 지방행정의 틀을 8도제(八道制)로 개편할 때, 기존에 있던 경기좌도와 우도를 통합하여 ‘경기’라 칭하면서 정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명 ‘경기’의 ‘경(京)’은 왕이 있는 서울을, ‘기(畿)’는 서울을 중심으로 주변 오 백리의 땅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경기는 시대에 따라 수도를 중심으로 그 위치가 달라졌고, 경기라는 말이 기원은 고려 때 수도인 개경(개성)주위를 경기로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다.
고려의 폐망과 조선이 건국으로 1394년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니 그 위치에 따라 경기의 구역도 변하게 되었고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는 모든 제도가 임금이 있는 한양을 중심으로 정해졌는데, 각도의 행정 구역도 국왕을 기준으로 좌도와 우도 또는 동도와 서도로 나누었다. 국왕은 언제나 남쪽을 바라보며 정치를 하기 때문에 이 기준이 적용되었는데 대개는 강을 중심으로 나누어졌다.
그중에서도 경기도는 한강을 중심으로 북한강 이북을 경기우도, 남한강 이남을 경기좌도로 구분하였는데 강화와 교동은 우도에 속했고, 남한강과 북한강의 사이에 있는 양근과 지평은 좌도로 나누어 명명 하였다.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좌도와 우도로 칭하던 경기도로 통합한지도 수백 년이 되었고, 해방 후에 서울을 중심으로 인구가 몰려 들다보니 인구가 급속히 팽창하여 2014년 7월 현재 경기도의 인구는 12,313,649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24%를 점하게 되었다.
물론 서울의 인구도 늘어나기는 했지만 이제는 경기도가 서울의 인구를 초월한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나고 있다. 이렇게 상황이 변화하다보니 경기남부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 졌고, 경기북부에는 군사적 요충지라는 명목과 수도권이라는 정치적 이해의 상충으로 인하여 63년의 세월동안 발전의 변방으로 남아 수많은 불이익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이런 차별로 인하여 경기북부 분도론은 지난 198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물론 중요한 선거 때마다 경기도 분도의견은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지만, 이는 우리지역을 대표하여 총리를 역임했던 정치인을 비롯하여 역대 도지사들의 반대와 정부 무관심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그 이면에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대통령 병에 걸려서 인구가 분산되는 것을 반대했던 것으로 인지되어 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경기도를 분도 하겠다는 의견이 산발적으로 제기되어, 1995년 지방선거 직전에 쟁점화 되기도 했고, 1992년 김영삼 당시 대선후보의 공약사항이었으며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마다 내걸었던 단골 이슈이기도 했다.
특히 경기북부지역 16대·17대 국회의원 후보자 전원은 분도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2003년엔 16대 국회의원이었던 홍문종 의원이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되기도 했다.
그 후에 2004년 4월엔 경기북도 추진기획단 및 분도 추진위원회가 설치되기도 했지만 경기남부지역의 반대와 도지사의 강한 거부감, 분도에 따른 재정적 부담과 행정상의 혼란 등을 이유로 그때마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기도를 둘로 나누자는 이슈가 등장할 때에 경기북부주민의 의견은, 경기도의 남부와 북부지역 간 불균형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데도 북부지역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고 있고, 경기도 제2청을 비롯해, 지방법원, 지방검찰청, 경기도경찰청 제2청, 경기도교육청 제2청 등 행정기관이 모두 정비되었으니, 경기북도를 신설할 모든 기반시설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내세우기도 했다.
또한 경기 남부와 북부의 경제·교통·문화·의료·교육환경의 양극화 현상이 날이 갈수록 격심해지고 있으나, 현재 인구 320만을 넘어선 경기북부는 경기도에 속한 탓에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묶여 대규모 공장이 전혀 없고 기업이 새로 입주하지도 못하는 불모지가 되었으니, 수도권 규제에서 제외되어야 하고, 군사시설보호구역, 상수원보호구역, 개발제한구역 등 각종 규제에 묶여 개발이 제한되어 역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을 성토하기도 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