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선후배와 동기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들 바쁘게 지내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더욱 반가웠다.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문득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너희들 통장에는 얼마가 들어 있냐?˝ 난데없이 웬 통장 얘기냐고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내 은행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았다. 혹시나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배는 빙그레 웃으면서 “은행통장 말고 덕(德)통장 말야, 덕 통장˝ 하는 것이었다.
“어허, 이 사람들! 은행에 돈 쌓이는 것만 관심이 있지 덕(德) 쌓는 것은 도통 무관심이로군. 사람이 어찌 돈과 밥으로만 살까,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덕(德)을 쌓고, 복(福)을 지어야 사람답게 사는 길이 되리라. 은행통장이야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하는 것을. 죽어서도 가져갈 수 있는 통장을 빨리 만들어 두시라 이 말씀이야.”
그의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신파조의 말투 때문에 좌중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날 모임 이후 며칠 동안 내내 ‘덕(德) 통장’이란 말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더러는 좋은 마음으로 베풀고, 뭔가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해도 어찌 보면 그건 진정으로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한 일이기 보다는 내 마음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