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를 살펴보면 정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영국의 위대한 명재상 윈스턴처칠 경이라고 생각된다. 그가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당시의 정상회담 분위기는 이러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 2월 처칠은 소련 고위층과의 회동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상에서의 회담으로 사태가 악화 될 것이라는 얘기는 이해하기 어렵다." 즉, 정상회담이라는 용어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 국내에서는 "EU 정상모임. G20 정상회담.등처럼 국가 최고권력의 뜻으로 변했지만, 정상의 의미는 산꼭대기를 의미한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던 문인출신 처칠 수상이 등산용어와 외교를 접목해 정상회담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창조한 것이다. 그 당시 영국은 에베레스트 정상정복이 큰 화제였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산 꼭대기 담판의 성공조건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보좌진들의 치밀한 준비와 협력일 것이다. 물론 정상회담의 주인공은 국가 최고 지도자들일 것이다. 화려한 조명도 이들이 받는다. 박근혜.김정은의 정상회담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다가는 실패하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대 뒤에서의 참모들 간의 협력과 교감과 실력이다. 제갈공명과 주유간의 치열한 협력과 지략의 대결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1. 죽의 장막을 걷어낸 1972년 닉슨과 모택동 간의 미.중정상회담이 대표적 성공사례로 여겨질 것이다. 닉슨의 밀사였던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은 1971년 7월 파키스탄에서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쇼를 부리며 극비리에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리곤 48시간 동안 베이징에 머물며 17시간을 주은래총리와 마주앉아 미·중 정상회담계획을 짠다. 이것도 미흡해서 1971년 10월 다시 베이징으로가서 7일간을 체류하며 주은래와 조율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키신저는 닉슨이 대통령에 취임한 1969년 1월부터 3년간을 이 역사적 닉슨. 모택동정상회담을 준비했다고 고백했다.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이렇게 유능한 큰 인물들의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참모 중에는 국가를위해 목숨바칠 믿음직한 참모가 보이지 않고 약은 사람만 보이니 걱정이다. 2. 철저한 준비 없이 치러진 정상회담의 예를 들어보자.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과 취임한 지 얼마안된 미국의 죠지 W 부시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그 예일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새로 취임한 부시 대통령에게 햇볕정책의 중요성을 빨리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성향과 그 당시의 형편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도 받았고 넓은지식과 경륜이 앞섰다고 생각하고 젊은 부시 대통령을 한 수 가르치려고 했었는지 부시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정일도 말귀를 잘 알아들으니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라고 역설하자.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국민을 굶겨 죽이는 김정일은 나쁜 사람입니다." 하며 들은 척도 안 하고 한마디로 묵살해버리자 김대중 대통령은 얼굴을 붉혀야 했고 햇볕정책은 알리지도 못하고,"This man"이라는 모욕적인 말을듣고,정상회담은 크게 실패하고 돌어와야했다. 그 후유증으로 외교부 내에서 유능했고 최고의 미국통이었던 반기문 차관은 물러나야만 했었다. 언젠가 이루어질 남.북정상회담의 준비는 철저해야한다,지금부터 준비해도 빠르지 않다, 정상회담이 어그러지면 주워담을 길이 없다. 김정은이 어리다고 가볍게 보아서도 절대 안될 것이다. 합의된 사항은 꼭 실천하고 이루어져야 한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