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조기 조 도령 글 읽는 도령 소리소리 듣기 좋게 잘도 읽는다. 수양버들 가지 가지 늘어진 아래 길게 느린 줄 위에 나란히 앉아 이 집 저 집 담 넘어 기웃거리며 의좋은 제비 남매 지저귑니다 / 저기 저기 저 색시 어여쁜 색시. 버선 한 짝 들고 앉아 잘도 깁는다. 수양버들 가지 가지 늘어진 아래 길게 늘인 줄 위에 나란히 앉아 이 집 저 집 담 너머로 기웃거리며 의좋은 제비 남매 지저귑니다.”
위 노래는 1946년 가을 해방된 조국의 태극기를 걸고 포천국민(초등)에서 학예회(學藝會)를 하였는데 필자가 무대에 등단하여 독창(獨唱)을 한 노래이기도 하다.
내 고향 포천에는 유난히도 제비가 많았는데, 특히 빨래를 말리는 빨랫줄 위에나 포천면(읍)사무소 수양버드나무 옆 줄 위가 제비들의 놀이터였다. 6·25 무렵에는 산제비(제비의 배 부분이 갈색 털인 제비로 산에서 벼랑에다 굴을 파고 산다)들이 집 근처 콘크리트 벽에다 진흙으로 집을 짓고 살아 어른들은 난리가 날 것이라고들 하였다(산새, 들새들이 민가(民家) 근처로 옮겨 살면서 인간의 보호를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흥부와 제비’, ‘제비와 놀부’, ‘흥부와 놀부’ 등의 제목으로 어릴 때 교과서에 실려 어린이들의 가슴 속 감동을 안겨주었던 ‘제비’ 동화는 사실 우리나라 ‘여름철새’이다.
우리 조상들은 3월 3일 음력 ‘삼짓날’을 ‘제비 오는 날’이라 하였으며, 9월 9일 ‘중량절’을 제비가 ‘강남 가는 날’이라고 하였다. 향교나 서원, 성균관의 입학식을 3월 삼짓날 행하였으며 졸업식을 9월 중량절에 행하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으니 미확인설이기도 하다. 제비는 반드시 은혜를 갚는 보은(報恩)의 새로 알려져 있어 ‘보은의 박씨’를 물어다 준 것을 심어 박을 열게 하여 키운 동생 흥부네 박 속에서 ‘금은보화(金銀寶貨)’가 쏟아져 나오는 박으로 인해 부자가 되고 반대로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 놀부 형은 복수를 당한다는 얘기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제비가 대청마루 앞 처마 밑에다 집을 짓고 똥을 싸고 깃털과 먼지를 날려도 우리 민족은 ‘복 제비’를 적극 보호하였다. 중국 남부의 동굴에서 집단 서식하는 제비는 입 속 목구멍에서 게운 토액으로 집을 짓는데 사람들은 이 제비집을 허물어다가 요리를 맛나게 만들어 먹는가 하면 섬에 사는 제비들이 멸치를 물어다 지은 제비 집을 헐어다 맛난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니 웃을 일이기도 하다.
내 고향 포천사람들은 강남 갔던 제비가 봄 되어 다시 찾아오는 집에서 제비 노래를 부르며 글을 익히며 바느질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요즈음도 제비 찾는 집 있을까?(농약공해, 자동차 매연 공해를 피해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