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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종보의 시사칼럼] 천국의 계단


이상창 기자 / 입력 : 2014년 09월 25일
↑↑ 김종보 소설가, 시인, 칼럼니스트
ⓒ (주)포천신문사
지난해 명성산의 억새꽃 축제 때 이야기다. 그날 부부 싸움을 하고나서 마음을 달랠 겸 산에 왔다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삶의 과정이 늘, 악마와 천사들의 투쟁같다며 자신의 부인과 끊일 날 없는 일생생활을 들려주었다.

자신도 왜 그런지 모른단다. 오로지 술만 취하도록 마시면 평소에는 말이 없다가도 사소한 일로 부인과 싸움을 한단다. 그토록 무엇 때문에 가족들을 괴롭히는 악마로 돌변하는지 자신도 모르겠단다. 그는 그런 연유로 자신에게 양면성이 함께 존재하는 두 얼굴을 자신도 싫어하기에 오로지 산에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싶어 늘 산에 오른단다.

사실 그의 궁극적 목적은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실체를 발견하고 싶어했다.
그날의 영상들이 더 선명하게 내 앞에 스쳐 지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보기위해 줄지어 산에 오르던 그날의 행렬이. 그 내면에 그들 나름대로 고귀한 삶의 의미에 대한 숙명하나 멍에에 메고 줄지어 올라가던 화려했던 그 모습들도 아른거린다.

“아무렴 그렇지 않고요.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것이 그뿐이겠어요? 막연히 기분전환을 위한 흐드러진 억새밭 정상에 올랐다는 쾌감의 미소 뒤에 솟아오르는 성취감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잖아요?”

그렇다. 억새라고 어찌 순탄한 바람의 사랑만을 받고 꽃술을 피어 올렸겠는가. 시린 바람 달래가며 제몸을 베어내는 칼날 같은 잎새의 두 눈을 부릅뜬 불만의 표정을 달래가며 억센 인내의 가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억새는 오로지 바람에 흔들거리는 불안하고 가녀린 제 팔을 눕혀 사다리 삼아 하늘 천국을 향해 욕망을 키워냈으리라.

인고의 눈물을 이슬로 승화시켜 대궁이 골다공증이 걸리도록 참아온 날들의 갈피마다 억새는 그 잎새에 깃털을 피어올리는 그날을 꿈꾸었으리라. 오로지 희망이라면 푸르른 녹음의 제 피붙이 잎새 하나 쥐어짜 입안에 흘리고는 삶의 갈증을 그렇게 이겨냈으리라.

오늘도 사람들은 황홀한 계단끝자락에 펼쳐있는 은반의 천국을 보기위해, 명성산 유혹의 산등성이 아래에서 어두운 터널에 갇혀 삶의 응어리진 딱지를 떼어내며 허덕거리고 있다. 그렇게 명성산 정상에 드라마처럼 펼쳐진 은반의 세계를 보기위해 천국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

굽이굽이 능선의 골짜기마다 억새의 후예들이 줄지어 환영하며 종려나무 가지가 흔들어대는 사이로 쏘아올리는 환희의 축포를 바라보는 그들의 어깨에, 어느새 무거운 멍에의 고삐가 풀리면서 그들의 마음에 가득 쌓인 오욕의 때를 씻어내고 있다.

억새가 지닌 칼잎과 은비늘 향연을 품은 선과 악의 그 양면성, 그것은 인간에게도 존재한다. 다만, 상대에게 어떻게 비추어주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덕과 비난이 판가름 날 뿐이다.

억새는 불안한 삶이 닥쳐올 때마다 슬럼프에 빠진 자신의 다리를 부축이며 천국의 계단이 부러질라, 스스로 자신을 동여매며 피워낸 위대한 명성의 우상이었다. 그렇게 인내의 하늘 계단위에 놓인 은비늘들은 억새는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역동의 월계관을 내밀어 주었다.

억새가 살아온 인고의 거울은 원초적 진실의 표상이기에, 올해도 억새의 은빛 마음은 그렇게 대궁을 말려가며 한해 동안 고통의 삶을 살아온 끝자락에서 비로소 천국을 향한 축포의 꽃술을 피어 올렸다.

잎새마다 비파를 타는 은반의 향연도 억새는 참아가며 인고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천국의 광장에 은빛 카페를 펼쳐 놓았다. 명성산 억새의 존재는 그렇게 해마다 변함없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해주고 있다.

우리가 삶의 고통을 마시며, 괴로움과 미움의 찌꺼기가 밥상머리 앞에 증오의 딱지가 되어 뚝, 뚝 떨어지는 날에도, 억새만은 우리와 달리 그 갈등마저 오로지 천국의 계단에 오르기 위해 꿈을 키웠다.

오늘도 우리가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비록, 우리의 잘못된 욕망의 누룩에 곰팡이가 피어날지라도, 그 여정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대궁 같은 인간의 심성에 그 은빛 욕망의 삶의 포자를 뿌려주며 등정에 나선 사람들의 발꿈치를 밀어 올리고 있다.

그날, 나에게도 환희의 은비늘들이 일제히 일어나 내 앞에서 춤을 추어대던 명성산 억새의 감동의 물결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김종보 / 소설가, 시인, 칼럼니스트

본명 김용갑(金容甲), 아호 유석(裕錫), 1955년 경기 화성 출생, 현재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거주, 수원영신중학교 졸업, 수원수성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KFL 과정수료(한국어전공), 서울 ‘제3의문학’ 3회 추천 데뷔, ‘옥로문학’ 신인상 수상, ‘전국서간문대회공모’ 입상, ‘전국시조대회공모’ 입상, 저서 ‘내가 반달로 뜨는 이유’, ‘물고기는 서서 죽는다’, ‘바나나와 결혼한 남자’, ‘크리딧’, ‘연꽃의 반란’, ‘엄마의 손풍금’ 외
이상창 기자 / 입력 : 2014년 0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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