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지방의 한 강연회에 참석했다 들은 이야기다. 이날 한 대기업에 다니던 근로자의 억울한 이야기가 주제로 오르면서 청중들의 분노를 사게 한 일이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로자의 생명과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성토가 뜨거워지는 광경을 보고 매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 근로자는 얼마 전 백혈병 말기였다 세상을 떠났단다. 그로인해 억울한 가족들이 지금까지 결론이 나지 않는 대기업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었다.
그도 어찌 화려한 꿈이 없었겠는가. 그것은 묻지 말자. 그도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나름대로 꿈을 펼치고 남들처럼 잘살아보려고 발버둥 쳐대던 엄연한 이 땅의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 그것만 기억해두자.
비록, 주어진 환경이 열악해도 묵묵히 이 나라 경제발전에 일원이 되어 사명감을 가지고 주어진 임무에 혼신을 다해 할 일을 다해냈던 그는 한 때 이 나라 산업전선의 역군이었다. 그도 지난 날 잘살아보려고 대우 좋고 이름 있는 대기업에 들어갔었다. 그것도 남들이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일자리라 해서 들뜬 마음으로 들어갔다.
그 후 그녀는 황제의 지시에 따라 매일매일 황금알을 낳는 쓸모 있는 암탉이 되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황금알을 하루도 빠짐없이 낳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이유 없이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기침이 자주 나오자 병원에 가서 진단 받은 결과 청천벽력 같은 백혈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 그와 함께 그 부모가 겪은 심정은 어떠했을까. 원인은 직장의 폐쇄된 환경 때문이었다. 그는 한순간에 꿈과 희망을 잃었다.
그가 얼마 전에 들었던 다른 부서의 직장동료의 죽음도 바로 백혈병임을 알았다. 그 소문을 듣자 그는 온몸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단다. 그는 그날부터 병마와 싸워 나갔다.
문제는 그 후 황제의 행동이었다. 법이 인정하고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황제는 방송에서 자신의 기업환경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늘어놓는 바람에 피해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아올랐다.
“그러니까, 법이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정을 내렸어도 대기업 황제는 우리 회사에서 얻은 병으로 인정할 수 없다, 이거지…?” “그것뿐이겠어…? 적반하장이라고, 오히려 회사에서 평소 건강관리를 잘못했다며 화살을 그 애들한테 돌렸대잖아.”
본래 지배자의 정체란 착취의 욕망이 낳은 분신 덩어리다. 도덕성 결여에 대한 진실의 목소리를 아무리 들려줘도 들리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일까. 아니다. 지배의 바이러스가 세상에 뿌려놓은 부정의 분진들이 정의와 양심의 눈마저 가려놓았기에 그러했다. 이 땅에 법을 만들어놓은 사람들도 법을 다스리는 사람들도 그 황제에게 바른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세상이기에 그가 이 땅에 군림하는 것은 당연했으리라.
“주객이 전도된 것이 다 그 때문 아니겠어요?” 황금알에 눈먼 황제는 그런 도덕적 기본마저 갖추지 못했기에 경제의 힘과 경제의 권력으로 버티어 냈을 것이다.
그녀는 지난날의 근로자의 인권과 처우개선을 위해 분신했던 열사들을 기억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이 시대가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했다.
오늘날 세상은 풍요로운 세상을 넘어 거리마다 넘치고 있다. 그 풍요로움의 잔치상이 벌어지는 광장마다 진열돼 있는 그가 낳은 황금알을 떠올리며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의 이름으로 잔치 상에 놓여진 상품들의 진열을 바라보자니 그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던 와중에 직업병을 얻어 죽었다.
오늘날 기업의 정신은 영리와 군림이 아니라, 인간의 참 생존권을 위한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로 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시대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는 처사에 대해 할 말을 잃었다.
생명의 소중함 따위를 늘어놓는 자체마저 볼멘소리로 들리는 현실에서, 노동의 권리를 삶의 방정식의 논리로 푼다는 자체를 이해 못할 무리수로 내세우는 마당에 어떤 해답을 기대할 수 있을지 그저 답답할 뿐이다.
황제가 뻔뻔하게도 변명의 독감에 걸린 목소리로 연기하듯, 세상을 향해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아도 여의도에 모인 힘 있는 사람들은 한 낮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그렇게 즐기고 있었단다. 그 무렵, 그동안 무수히 황금알을 쏟아놓았던 그 암탉은 목구멍에서 주최할 수 없는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그 때 그동안 그토록 그가 낳은 화려했던 황금알들도 빛을 잃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의 붉은 울부짖음이 패잔병 머리위로 하염없이 떠가는 전선의 포연처럼 빠져나가자 그 길을 따라 황제의 지붕에 연줄처럼 길게 늘어진 검은 무지개의 분노가 서울 여의도 하늘까지 드리워졌어도 여의도 사람들은 놀라기는커녕, 또 다른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뚝, 뚝 떨어지는 그녀의 영혼이 흘리는 눈물만 바라보고 있었단다.
그 때쯤 또 다른 시간의 그림자를 따라 나타난 황제의 경비견들이 숲속에서 기어 나와 어두운 들판을 활보하고 있었다.
이 땅에 진정으로 기업의 참 소명의식을 지닌 황제는 없는 것일까? 진정으로 정의와 진실의 갑옷을 두르고 인간의 생명과 인권을 보장하며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황제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그것도 아니면, 그 언제쯤 우리에게 희망이 담긴 소식이 전해질지 그 말 한마디라도 기대하고 싶다.
김종보 / 소설가, 시인, 칼럼니스트
본명 김용갑(金容甲), 아호 유석(裕錫), 1955년 경기 화성 출생, 현재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거주, 수원영신중학교 졸업, 수원수성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KFL 과정수료(한국어전공), 서울 ‘제3의문학’ 3회 추천 데뷔, ‘옥로문학’ 신인상 수상, ‘전국서간문대회공모’ 입상, ‘전국시조대회공모’ 입상, 저서 ‘내가 반달로 뜨는 이유’, ‘물고기는 서서 죽는다’, ‘바나나와 결혼한 남자’, ‘크리딧’, ‘연꽃의 반란’, ‘엄마의 손풍금’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