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면서 필요(必要)와 선호(選好)에 대한 말을 반추(反芻)하게 된다. 되씹어보게 한다. 필요하다는 것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적(絶對的)으로 있어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선호는 그게 아니다. 선호는 선택(選擇)사항이다.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있는 것 중에서 맘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필요는 절대적인 것이고 선호는 선택적인 것이다. 필요는 초이스(choice)가 없는 것이고 선호는 초이스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엔진 변속기 바퀴 제동장치(制動裝置) 같은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차의 색깔 같은 것은 어떨까? 흰색 빨간색 노란색 어느 색깔을 좋아하는가? 이것은 선호의 문제일 것이다. 차의 색깔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의 기호(嗜好)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싫증나면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엔진이나 변속기 바퀴 그리고 제동장치 같은 것은 싫증난다고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필요와 선호를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필요와 선호는 이처럼 다른 것이다.
상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요즘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병영(兵營)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暴力)과 가혹행위(苛酷行爲)이다. 이 같은 일들이 사회문제로까지 비화(飛火)되고 있어 걱정된다. 세상사 모든 일이 도(度)를 넘으면 안 되는 것[過猶不及]이다. 본분(本分)을 잃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군(軍)은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다.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보루(堡壘)로서 그 책무를 다하라고 부여(附與)한 특권이다. 그러나 그것은 훈련(訓練)과 전투(戰鬪)에서 그리하라는 것이지 내무생활(內務生活)에서 그리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4대 의무(義務) 가운데 하나로 ‘국방(國防)의 의무’를 손꼽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해야 하는 일과 선호하는 일은 다른 것이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안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다. 군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군대를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병영생활(兵營生活)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병사(兵士)들을 모두 출퇴근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만큼 희생(犧牲)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군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자는 소리가 들린다. 이를 입법(立法)하겠다고 공약(公約)으로 내 세우는 의원들도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라.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외국 군인의 복무기간이 36개월 이상이라는데 내 나라를 지켜야 하는 우리 군인의 복무기간이 18개월로 바뀐다면 어찌 되겠는가? 소가 다 웃을 일 아닌가? 준전시(準戰時) 상황이다. 이 순간 군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자는 생각도 떨쳐버려야 하고 군대를 뒤흔드는 일도 자제(自制)해야 한다. 군의 존재存在)는 절대적인 것이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군은 사기(士氣)를 먹고 자라는 집단이다. 잘못된 일이 발생했다고 해서 군을 비하(卑下)하거나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 물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야 한다. 잘못된 제도도 고쳐나가야 한다. 때로는 문책(問責)도 하고 패널티(penalty)를 주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여야 한다. 명령체계가 흔들리고 하극상(下剋上)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명령불복종 사태가 일어나서는 더 더욱 안 된다. 군은 ‘필요의 집단이지 선호의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정자도 자성(自省)해야 한다. 옛 사람들은 말한다. ‘군주가 살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하나는 덕이 그 사람의 지위와 맞는지, 둘은 공이 녹봉과 맞는지, 셋은 능력이 그 자리에 맞는지 살피는 것이다(君之所審者三 一曰德不當其位 二曰功不當其祿 三曰能不當其官).’ 요즘 식으로 바꾸면 능력인사, 공개인사, 업적주의다. ‘부족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不患寡 患不均).’ 위정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