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국가의 무능으로 300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을 수장시켜 놓고도 반성하지 않고 유족들의 요구가 지나치니 단식자가 순수하지 않느니 하는 유언비어나 퍼트리고 있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보상도 문제이지만 진상조사를 철저히 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자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명백하게 밝히기 위해서 권력과 관련된 모든 잘못과 관행을 바로잡아야 하며, 이를 민주적으로 이끌어갈 자유정신이 요청되고 있다. 필자는 한국 사회에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자유라고 주장한 김수영 시인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김수영은 뒤떨어진 후진국에 사는 시인으로서 가장 절실하게 추구하는 가치는 자유정신이다. 하지만 시인의 자유를 방해하는 모든 적들과 투쟁을 벌이는 필사적인 노력은 성공의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적과의 전투는 시인으로 하여금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타협적인 시인들은 ‘오늘의 적’은 옹호하면서도 ‘내일의 적’을 몰아내는 데 열성적이다. 왜냐하면 ‘오늘의 적’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내일의 적’을 상대하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보수언론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권력의 관련성이나 잘못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으며, 오히려 문제해결을 위해서 유족들이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월호에 관련된 권력은 오늘의 적으로 잘못을 논하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관피아 척결 등의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마음과는 대조적으로 모든 권력들은 과거와 기득권에 집착하여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같은 문맥에서 기존의 가치와 형식을 거부하는 김수영 시인의 아방가르드적 추구에 대해서 사회의 전통이나 도덕, 윤리 등의 보수적 가치들은 역사발전을 위한 변화를 ‘불온’이나 ‘퇴폐’ 등의 죄목으로 판결하고 시인을 구속하고자 하였다. 김수영이 함께 살아가는 자연이나 공동체뿐만 아니라 그가 지니고 살고 있는 습관이나 믿음까지도 그의 변화를 가로막는 적이 되어 완고하게 버티고 있는 형국이었다. 모든 기득권들이 개혁에 대해 방패로 가로막으며 변화를 추구하는 자유의 정신에게 배반의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김수영의 ‘적’은 정치적으로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세력 또는 열강의 제국주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학적으로는 참여적 의식과 저항정신이 결핍된 박인환이나 서정주나 청록파 시인들이나 또는 이어령 같은 비평가에 대해 적대의식을 강하게 보여준다. 또한 일상적으로는 아내와 자식을 포함하여 삶의 일상성에 대해 풍자적인 비판의식을 견지하기도 한다. 적대적 요소들은 시인의 사고와 정신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도그마일 수 있고, 시인의 전위적 행위나 표현을 가로막는 수구적인 도덕, 윤리, 전통일 수 있다.
그것들은 시인의 끊임없는 변화를 방해하거나 규제하기 때문에 시인은 그것들을 적으로 여기고 일전을 불사하였다. 시인은 자유정신과 아방가르드를 구가하려고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끊임없이 규제의 성을 쌓고 장애물의 그물을 던진다. 즉 시인이 추구하는 자유정신과 권력이 주입하는 통제와 규제가 시인의 정신 속에서 갈등구조를 구축하며 전투를 벌이는 형국이다. 시인의 삶은 항상 적과 대치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시인이 적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것은 멜로드라마의 악한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전 영역에 잠재되어 있는 편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개혁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개혁론자들의 우군이거나 친구, 이웃 또는 그의 우호적 가치관들이 이중적 마스크를 쓰고 그에게 접근하고 있어 그는 극심한 심리적 혼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적의 위치가 일정한 전선을 구축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전선이 불가시적이고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다. 즉 시인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 적들이 숨어있거나 우군으로 가장하고 존재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모든 영역에 대해 경계 태세를 펼치고 내부를 살피고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즘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으로 외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되면 개혁의 이름 위에 ‘좌빨’, ‘친북’ 등의 불온적 명패를 붙여서 표현의 자유를 막는 이중인격자가 우리들 중에 너무 많다는 것이 한국사회의 비극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자신들을 돌이켜 보면서 개혁의 적이 ‘나’가 아닌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김수영은 우리를 둘러싼 가면을 쓴 ‘적’에 대해 이렇게 풍자한다.
우리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커크 더글러스나 리처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요릿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