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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의 세상보기] 『변호인』『명량』의 인기몰이 이면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4년 08월 11일
↑↑ 김성렬 대진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문화콘텐츠연구소장, 포천신문 칼럼위원장
ⓒ (주)포천신문사
요즘 우리가 사는 곳이 정말 살 만한 곳인지를 회의케 하는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터지고 있다. 세월호 침몰, 고양터미널 화재, 임병장의 총기난사, 선임병의 구타에 의한 윤일병 사망 등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의 동계가 높아지는 사건들이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줄을 이었다. 윤일병의 사망 사건으로 인해 작은 사건으로 묻혀버렸지만 가출 여중생들이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동숙하던 친구를 폭행해 죽이고 그를 은폐하려 시신에 불을 지르고 훼손한, 차마 말로 옮기기 끔찍한 사건도 있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연이어 벌어진 이런 사건들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과연 안전한 사회인가? 현대 한국 사회야말로 홉스가 이른 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시현하고 있는 야만의 장소가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나의 판단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적 원한을 아무에게나 투사, 해소하는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라고 생각한다. 닥치는 대로 걸린 사람을 범행의 표적으로 삼아 얼마 되지도 않는 금품을 빼앗고 무차별로 살해한 소위 ‘막가파’의 엽기적 살해 행각이 자행된 것이 1990년대 중반이다. 1990년대는 공산권의 붕괴로 자본주의만이 최종적이며 유일한 이념으로 확정되고 부시 대통령의 신자유주의가 경쟁과 효율을 최고의 미덕으로 밀어올린 시기이다. 이 시기로부터 사람을 우선하기보다 그 사람이 가진 권력과 돈을 우선시 하는 정글의 법칙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쓴 재일동포 학자 강상중에 의하면 현재 한국 사회는 빈부 격차, 학력과 소득 격차, 이에 말미암은 행복과 불행의 격차로 인해 르상티망(ressentiment)의 감정에 깊이 사로잡혀 있다.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지적이다. 르상티망은 니체가 규정한 개념으로 권력자에 의해 촉발된 강자의 공격욕에 대한 약자의 격정이 전화한 복수심이다.

실상 최근의 충격적 사건들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본다. 윤일병 사건의 주범인 김병장이나 다른 가담자도 진작 선임병들에게 구타당한 적이 있다 하니 이들의 복수심이 다른 대상에게로 전이, 해소된 것이 이번 사건의 중요한 한 계기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린 가출 여중생들의 친구 살해도 가출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불행한 처지와 이로부터 비롯한 복수심이 애매한 친구에게로 옮겨 붙은 것이라 하겠다.

세월호 사건은 이러한 복수심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나 나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판단한다. 팬티 바람으로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배를 버려 수많은 어린 생명이 수장된 비극의 원인에는 선장의 무책임이 우선 도드라져 보인다. 그러나 나이 칠십에 가까운 그 선장의 무책임성의 원인을 유추해 볼 때 그에게도 르상티망의 감정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 인다. 이백만원대의 월급을 받고 늦은 나이까지 일해야 했던 그의 개인적 정황, 또 그의 삶을 통털어 책임을 진다고 나서는 것이 오히려 더 불이익을 초래하는 한국적 경험 속에서 그 또한 ‘남이야 어떻게 되건’ 하는 복수심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한국인들의 정서적 기제에 한(恨)이라고 하는 마이너스적 감정은 있었으나 그것은 복수를 전제한 감정이 아니라 ‘나를 버리고 가는 님아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나 나버려라’하는 소극적이고 체념적인 원망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복수심으로 전화된 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급격한 근대화를 이루면서 자본주의적 욕망은 극대화되었으나 내/외면적으로는 공정한 경쟁의 룰을 체화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본다.

특히 베버가 지적한 것처럼 카지노화된 자본주의, 즉 한탕에 대한 욕망과 끝없는 쾌락을 허용하면서도 부드러운 전체주의가 음험하게 지배하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국인들은 힘 있고 돈 있는 자가 누리는 권력을 진심으로 승인하지 않는다. 내가 오늘 당하는 괄시와 배척은 정당한 방법으로 획득한 권력이 아니라 무언가 모종의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자들에 의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개인 주체는 언제든 복수심으로 폭발할 수 있는 화약심지를 내장하게 된다.

요즘 공교롭게도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들- 변호인, 명량에 대중이 열광하는 것이 나는 이런 심리의 발로로 보인다. 힘없는 약자를 변호하느라 가시밭길을 걸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변호인〉, 선조의 배척과 질시를 받으면서도 충과 효의 전범을 보인 〈명량〉이 대히트를 치는 것은 이면에 그런 공공선과 공공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는 잘 정초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역으로 입증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 한국인들의 유다른 평등의식,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그러한 심리도 우리들 르상티망의 감정에 한 원인을 제공하는 것 같다. 달리 말해 헤겔이 말한 인정 욕구가 한국인에겐 유달리 강하다는 것인데, 복수심도 따지고 보면 인정을 해주지 않는 남에 대한 원망에서 비롯한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 우리 사회의 위기 해소에는 단발적 국가대개조가 아니라 주체의 내외부에 깃든 이런 문화적/심리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더 긴요하다.

사회적 공공선.공공의 가치가 엄중히 통용되도록 하는 것과 남을 인정해 주는 마음을 위한 지속적 고민이 요구되는 때이다.

김성렬 / 대진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문화콘텐츠연구소장, 포천신문 칼럼위원장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4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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