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拙速)과 조장(助長)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요즘이다. 일에 능숙한 사람은 일을 할 때 먼저 머릿속으로 구상(構想)한 뒤에 착수한다. 생각을 정리한 후에 시작한다. 이와 반대로 일에 서투른 사람은 아무런 생각 없이 손부터 대고 본다. 졸속(拙速)으로 일을 처리한다. 拙速에서 拙은 ‘손’의 뜻인 手(扌)와 ‘내어 놓다’의 뜻인 出의 합자로 치밀한 계획 없이 무작정 손부터 대고 본다는 데서 ‘서투르다’라는 뜻이다. 졸속은 ‘서투르지만 빠르다’라는 뜻으로 일을 지나치게 빨리 서둘러서 어설프고 서투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청(淸)나라 원매(袁枚)라는 사람이 쓴 [속시품(續詩品)]에 이런 말이 있다. ‘빨리 가면서 점잖게 걷는 것은 다 완전히 할 수 없고, 갑자기 자란 것은 그 망하는 것도 느닷없이 한다[疾行善步 兩不能全 暴長之物 其亡忽焉]’. 뭐든지 빨리 해놓고 보자는 우리 사회의 졸속주의(拙速主義)와 조장(助長)에 경종(警鐘)을 울리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송(宋)나라의 한 농부가 자신의 논에 심은 벼가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벼의 싹이 자라도록 싹을 뽑아 올려주었다가 시들어 죽고 말았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단어가 바로 조장(助長)이다.
졸속으로 일을 처리해서도 안 되고 조장해서도 안 된다. 부머랭(boomerang)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매사 근사(近似)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성실(誠實)해야 한다. 성실하다는 것은 ‘성스럽고 참되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하고 참된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다. ‘열 눈이 나를 지켜보고 열 손가락이 나를 가리킨다[十目所視 十手所指]’는 말이 있다. 몰래 한 일이라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종국에는 세상 사람들을 속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어 어그러짐이 없도록 삼감’을 뜻하는 신독(愼獨)을 중시했다.
우리 모두 성찰(省察)해야 한다. 성찰은 남의 허물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행(言行)을 반성하며 깊이 살피는 것이다. 사기(史記)에 ‘눈은 잔털의 끝을 볼 수 있어도 자기의 속눈섭은 보지 못한다(目見 毫末不見其睫)’고 했다. 이는 남의 허물은 눈에 잘 띄지만 자신의 허물은 알아차리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바둑에 복기(復棋)라는 것이 있다. 복기는 다음에 좀 더 나은 대국을 벌이기 위한 자기반성(自己反省)의 시간이다. 승자에게는 패자를 위한 위로(慰勞)의 시간이고 패자에게는 승자에게 한 수를 배우는 경청(敬聽)의 시간이다. 인생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지나간 일을 복기(復碁)할 수는 있다.
복기한다는 것은 기록(記錄)을 남긴다는 것이다. 자료(資料)를 남긴다는 것이다. 근거(根據)를 남긴다는 것이다. 그것을 종합(綜合)하고 분석(分析)한다는 것이다. 프라이머리 데이터 (Primary Data)는 물론이고 쌔컨다리 데이터(Secondary Data)까지 재구성(再構成)해서 참고하고 판단(判斷)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 유래가 없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라는 위대한 문화유산(文化遺産)을 가지고 있다. 우리 선조(先祖)들이 한 것을 우리가 못 할 리 없다. 잘했거나 못했거나 사실(facts)을 그대로 기록으로 남겨 후대들에게 전해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다.
졸속과 조장을 피하는 길은 기준(基準)을 세우고 표준(標準)을 따르는 것이다. 基는 집을 지을 자리인 터를 뜻하는 것이고 準은 사방(十)을 내려다보는 새[佳]인 ‘새매’를 가리킨다. 새매는 먹잇감을 사냥할 때 하늘 높이 떠서 사방을 모두 빠짐없이 관찰하기 위해 수평을 유지한다. 종합해 보면 물과 새매의 공통점은 둘 다 절대적 수평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準은 표준이라는 뜻으로 확대된 것이다. 사물과 현상에 기준점(基準點)이 없을 경우 어찌 되겠는가?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기준과 표준을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졸속과 조장을 말하지 말고 승묵(繩墨)과 준승(準繩)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