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치권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당리당략에 몰두해 싸우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실망이 되어 이러한 상상을 해본다.
A 정당의 의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머리가 좋고 약아 보인다, 만약 저 사람들이 일제 때 살아 있었다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일제와 싸울 의원이 몇 명이나 될까?
B 정당의 의원들을 보면 의심스럽고 미더워 보이지 않는다, 만약 저들이 북한의 김정은 3대 세습독재정권이 쳐들어온다면 그들과 싸워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의원이 몇 명이나 될까?
임진왜란 때 현장에서 국란을 극복한 유성룡의 징비록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본다.
오늘날도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무능한 선조의 처신에 실망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선조는 왜군이 서울로 북상한다는 소식에 어쩔줄 몰라 하다가 서울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한다. 압록강 아래의 의주까지 도망 온 선조는 명나라에 몸을 의탁 할 작정이었다.
선조가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가겠다는 뜻을 나타내자 유성룡은 이렇게 선조에게 직언한다. “임금이 탄 수레가 우리나라 땅을 한 발짝이라도 넘으면 조선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닙니다”라며 반대했지만 그래도 구구한 생명을 건지려고 백성을 버리고 명나라로 가려 했다. 그런데 명나라는 못난 임금 선조가 압록강을 넘어오면 선조를 체포해 한 건물 안에 감금해 버리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명나라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때에 유성룡은 “국가의 위급이 여기까지 이르렀는데 만의 하나라도 희망을 걸수있는것은 민심뿐이다, 만약 민심이 흐터진다면 어쩔도리가 없다”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백성들의 마음은 냉담했다. 선조가 탄 수레에 돌을 던졌고, 병사를 모집하면 모이지 않을 뿐더러 모이더라도 군졸로 뽑히기를 거절했다.
조선의 장수들은 군사들이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며 부하의 목을 베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군사를 아껴줄 줄 모르는 장수아래에 병사들이 모일리가 없다. 조정에서는 전투를 그르친 장수들을 문책하지도 못했다. 상벌이 분명치 않으니 문란했고 조선은 명나라의 구원병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명나라는 겉으로는 조선에 대한 의리를 내세웠지만 자기나라의 국익을 위한 출병이었다. 왜군이 조선을 지나 명나라 땅에 들어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명나라는 조선이 일본의 침입을 막지 못했다며 조선을 두, 세 개로 쪼개어 중국의 울타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조선의 반을 달라고 명나라에 요구했다.
조선은 중국과 일본의 전쟁터가 되었고 철저하게 이해타산으로 움직이는 외교현실 앞에 떨어야 했다. 지금의 외교, 국방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오늘날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임진왜란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그 속에 압축된 모습으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나라를 이끌어야 할 정치권이 진정한 지도자의 면모를 보이기보다는 권력다툼과 자기들의 안위에 매달려 있으니 국민은 불안하다. 유성룡은 “환란이 다시 없도록 조심하자”고 지금도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