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새벽에 테니스 클럽에서 노인들과 운동을 한다. 칠팔십대 노인분들이 건강을 위해서 매일 운동장에 나와서 테니스를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하지만 필자는 그분들과 가급적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 논쟁을 하는 것을 피한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세대 차이에서 오는 정치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간극이 그토록 큰 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장수시대에 접어들면서 노인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그들의 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표명은 한국사회의 큰 변수가 되고 있다.
클럽회원들은 테니스 경기를 마치고 추념하여 막걸리 파티를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약간 거나해진 노인회원들 중 서너 분은 젊은 세대들의 진보적인 성향에 대해 비분강개하며 공격을 하곤 한다. 필자가 다른 회원들과 권력자들에게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어께 너머로 들었는지 한 분이 교육자가 국가의 원수에 대해 심하게 비판적인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들어 곤혹스러운 적이 있다. 그분들은 군사정권을 극복하고 민주적인 시민사회를 만든 시민들이 가져야할 자세는 충성과 복종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필자는 시민과 국민의 정의를 분리하여 정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확립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한국인의 의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국가는 시민들에게 국가주의(Nationalism)라는 이데올로기로 전체를 강조하고 시민 개개인의 자유를 희생하도록 규제한다. 물론 국가가 없는 민족은 매우 허약하고 이방인으로서 소외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사에서 독재를 일삼는 권력자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시민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억압하는 경우는 더 많았다. 한국사회도 일본 강점기를 지나서도 이승만, 박정희의 독재정권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에 의해서 연이어 민주주의 퇴행이라는 고통을 당했다.
권력자들은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를 내세워 시민들에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유보할 것을 강요하였다. 국가의 경제를 위해서 국민들은 저임금에 시달려야 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업의 성장을 도모하였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금을 내고 어느 정도 희생을 해도 좋다는 의식은 수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쿠데타 등의 불법적 행위를 통해서 권력을 잡은 후 국민들의 시민권을 제한하고 권력자들은 기업으로부터 뒷돈을 챙기는 위선을 용납하는 것이 국가주의나 애국주의는 아닌 것이다.
한국인은 국민인 동시에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추구하는 시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흔히 수구적인 노인들은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에 성공하여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경제적 수준을 올리는데 권위주의적 정치가 기여를 했으니 이를 이끈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비판하고 저항하는 자들을 북한으로 보내버리자고 삿대질을 하기도 한다.
국가발전을 위해 70-80대 노인들이 헌신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이 어떻게 먹고 사는 것만으로 충족될 수 있는가.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시민으로서 자유를 얼마나 누릴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단지 배부르게 먹는 국민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였다. 한국인들은 자유와 정체성을 누리기 위해 4.19 혁명과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을 통해 시민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통해서 우리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필자는 노인분들에게 시민은 국가의 상징인 대통령에게 순응하고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위탁한 정치행위들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감사하는 권리가 있음을 설명하였다.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하는 것이 결코 국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누리는 선진국가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라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우리는 세대의 차이를 인정하되 서로가 소통하고 그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