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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이중희] 조선의 인사시스템을 배우자


이중희 기자 / ijh460325@hanmail.net입력 : 2014년 07월 16일
 
ⓒ (주)포천신문사 
조선의 9대 임금인 성종(成宗)대왕께서 송영(宋瑛)이란 사람을 사헌부의 고위관리로 임명하려 했다.

사헌부는 지금으로 치면 감사원이나 검찰에 해당하는 권력기관이라 하겠다. 그러자 사간원이나 사헌부에서는 송영을 임명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들고 일어났다.

그 이유인즉, 송영은 단종복위 운동에 가담했던 대역죄인의 후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성종의 의지는 강력했지만 사간원과 사헌부 역시 굽히지 않았다, 몇 번의 공방이 오가다가 마침내 성종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성종은 옥음을 높이며 이렇게 말했다, “왕의교지가 그대들의 탄핵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송영은 성종시대 도승지와 대사헌을 역임했던 큰 인물이었다.

흔히 조선시대엔 국왕이 모든 인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 했던 것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탄핵과 서경(署經)등의 방법으로 왕의 인사를 견제했다. 서경이란 5 품 이하의 관리를 임명할때 임금의 인사 안(案)에대해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적격한지 부적격한지를 따져서 사인하는 것이었다. 사인을 안 하고 50일이 넘게 되면 그 인사는 자동으로 무효가 되는 것이었다.

위세등등한 사간원과 사헌부도 꼼짝 못하게 하는 직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조전랑(吏曹銓郞)이라는 직책이었다. 이조전랑은 직급으로만 치면 이조(吏曹)의 5품, 6품 정도의 하급관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간원과 사헌부의 관리 임명 추천권을 가지고 있었다, 관직의 꽃이라고 불리던 이조전랑은 당시의 유능하고 실력있는 엘리트 집합장소라는 홍문관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덕망 있는 사람으로 골랐다.

이조전랑은 직속상관인 이조판서를 포함해 누구로 부터도 활동하는데 간섭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전임자로 하여금 자신의 후임자를 천거하게 했다. 큰 잘못이 없는 한 삼공육경(三公六卿)까지 출세가 보장돼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소신껏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국정은 임금과 정승 판서에게 맡기고 이들은 권력남용과 부정을 사간원과 사헌부로 하여금 감시하게하며, 이조전랑으로 하여금 다시 사간원과 사헌부를 견제하게 하는 것, 이같은 삼각구도의 균형과 견제 속에 조선왕조를 500년 지탱하게 한 인사시스템의 훌륭함이 있었다. 현재의 우리나라는 박근혜정부의 총리와 장관 임명의 미욱하고 서투름에 국민들의 실망과 원성이 높다.

국가의 인사를 국가와 국민에게 필요한 인사가 아니라, 대통령의 뜻에 맞는 사람을 뽑는 것 정도로 아는 인식 수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인사시스템은 조선시대만도 못한 것 같다. 세도정치를 통해 권력자들이 인사를 독점하고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이 사라졌던 조선 말기의 상황을 현 집권층은 상기해 보았으면 한다.

이중희 / 시인, 한국문협 문단윤리위원, 국제펜클럽회원, 한국정책개발원 경기도지회장, 포천신문 자문위원장
이중희 기자 / ijh460325@hanmail.net입력 : 2014년 0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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