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콜(love call)과 워닝콜(warning call)이란 말이 생소할지도 모른다. 러브콜은 사랑을 고백(告白)할 때 쓰는 말이고 워닝콜은 경고(警告)를 발할 때 쓰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말이 연인(戀人)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국가 간에도 사용된다.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라. 어떠한가?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러브콜과 워닝콜이 빈발(頻發)하고 있지 않은가? 자주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소련이라는 4강에서 불어오는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삼각파도파도에 휩쓸려 있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 난국(難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할 처지에 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이 미국에 먼저 러브콜을 걸었다. 사랑하니 돌아와 달라(return to Asia)는 것이었다. 일본과 필리핀이 선두에 서고 베트남과 말레이시아가 뒤를 따랐다. 미국도 오랫동안 소원(疏遠)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에 러브콜을 걸었다. 미얀마와 라오스가 대상이었다. 중국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팔을 걷어붙이고 사랑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전통적 우방(友邦)이었던 두 나라에 더 많은 러브콜을 걸었다. 아니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러브콜을 연발해 보내고 있다. 자기편으로 돌려놓거나 적어도 반중적(反中的) 언행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미중(美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러브콜 경쟁이 때로는 워닝콜로 변하기도 한다. 자신의 편이었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이 변심의 징후(徵候)를 보이면 러브콜이 워닝콜로 바뀌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 중에서 미중 양국으로부터 러브콜과 워닝콜을 번갈아 받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한중(韓中)간에 러브콜이 자자지자 미국의 전문가들이 경고를 발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머잖은 장래에 중국의 지역적 패권을 받아들여 중국에 점점 기대거나 또는 중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결정적 영향을 감안해 중국이 지원하는 통일과 한미동맹 축소를 거래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한다.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형국이다. 분석적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는 서양에서는 ‘사랑’하면 ‘love’만을 생각하나 종합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는 동양에서는 ‘사랑’하면 ‘애증(愛憎)’을 생각한다. 애증은 언제나 같이 가기 때문이다. 사랑의 이면에는 항상 증오(憎惡)가 따라다닌다는 말이다. 흔히 경제는 중국, 안보(安保)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말들을 한다. 오늘 우리나라의 처지를 한마디로 일컫는 말이다. 미국에 치우칠 수도 없고 중국에 치우칠 수도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거기에 북한과 일본이라는 변수가 우리의 처지를 더욱 난감(難堪)하게 한다. 어렵게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솔로몬의 지혜(智慧)가 절실하다.
역사(歷史)에서 배워야 한다. 그 옛날 국난(國難)에 처했을 때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그 위기를 타개(打開)했는가?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거란의 1차 침공 때 싸우지 않고 담판(談判)으로 소손녕(蕭遜寧) 대군을 물리친 서희(徐熙)의 지략(智略)을 숙지(熟知)해야 한다. 배우고 익혀야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하지 않았는가. 적을 알고 나를 알고 위험에 대비(對備)해야 한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앞을 내다보고 대책(對策)을 강구해야 한다. 실력을 쌓아야 한다. 맨주먹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무기(武器)가 말해주고 군비(軍備)가 말해주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약소강국(弱小强國) 스위스를 보라.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열강(列强)에 둘려 쌓여있으면서도 평화(平和)를 보장 받고 있지 않은가? 그 비결(秘訣)은 간단하다. 죽기를 각오하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언제 전쟁이 나더라도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하나로 뭉쳐 결사항전(決死抗戰)의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러브콜과 워닝콜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