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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칼럼] 안전 불감증과 교토삼굴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4년 05월 08일
 
↑↑ 이희용 칼럼니스트,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꾀 많은 토끼가 굴을 세 개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내용으로, 교묘한 지혜를 발휘하여 위기를 피하거나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는 말로 교토삼굴(狡兎三窟)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는 맹상군과 그의 식객 풍환(馮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풍환은 제나라의 재상인 맹상군의 식객(食客)이었다.

맹상군은 왕족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嬰)의 아들로 이름은 전문(田文)이고, 맹상군은 그의 호였다. 풍환은 원래 떠돌아다니던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식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이때 맹상군은 그의 몰골이 하도 우스꽝스러워 별 재주가 없어 보여서 특별한 애정도 없이 그냥 받아주었다.

하지만 풍환은 대단한 선경지명이 있는 괴짜였다. 맹상군은 그를 3등 숙소(宿所)에 배치했는데 고기반찬이 없다고 늘 투덜댔다. 그래서 2등 숙소로 옮겨 주었는데 이번에는 수레가 없다고 불평을 하였다. 하여 마지막으로 1등 숙소로 옮겨 주니 이제는 그럴 듯한 집이 없다며 투덜댔다.

당시 맹상군은 설이라는 지방 현재로는 산동성 동남지방에 위치한 1만 호의 식읍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3천 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식읍 주민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고 하는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누구를 보내서 돈을 갚으라고 독촉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1년이 넘도록 무위도식 하고 있던 풍환이 자청했으므로 밥값 좀 하라는 심사로 그를 설로 보내기로 정했다. 풍환은 출발할 때 “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 하고 맹상군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무엇이든 좋소. 여기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라고 하였다.

이윽고 설 땅에 당도한 풍환은 빚진 사람들을 모아서 차용증을 하나하나 점검해보니 이자만 도 10만 전을 받았다. 예상외의 좋은 결과였고 징수가 끝나자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여러분의 상환 노력을 어여삐 보고 모든 채무를 면제하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 그리고는 모아 놓았던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렀다. 차용증은 모두 재로 변하고, 사람들은 그의 처사에 감격했다.

설에서 돌아온 풍환에게 맹상군이 “선생은 무엇을 사오셨는가?” 하고 물어 보았다. 이때 풍환이 말하기를 “당신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리입니다. 차용증서를 불살라 당신을 위해 돈 주고 사기 힘든 은혜와 의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라 하였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맹상군은 매우 마땅찮은 기색이었다.

이듬 해 맹상군이 제나라의 새로 즉위한 민왕(泯王)에게 미움을 사서 재상직에서 물러나게 되니, 맹상군을 모시던 3천 명의 식객들은 모두 뿔뿔이 떠나버렸다. 이때 풍환은 그에게 잠시 설에 가서 살라고 권유했다. 맹상군이 실의에 찬 몸을 이끌고 설에 나타나자 주민들이 환호하며 맞이했다.

맹상군이 말했다. “선생이 전에 은혜와 의리를 샀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소.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 그러자 풍환은 “지금 경께서는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아직 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 없이 잠을 즐길 수는 없습니다. 경을 위해 나머지 두 개의 굴도 마저 뚫어드리지요.”라고 했다.

두 대의 굴을 더 뚫겠다던 풍환은 위(魏)나라의 혜왕(惠王)을 찾아가 설득하여, 맹상군을 등용한다면 부국강병을 실현할 것이며 동시에 제나라를 견제하는 힘도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마음이 움직인 위나라 혜왕이 금은보화를 준비하여 세 번이나 맹상군을 불렀다. 하지만 그 때마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혜왕의 부름에 응하지 말 것을 은밀히 권했다. 그 이유는 다른데 있었기 때문이다.

위나라의 혜왕이 맹상군을 등용하려 한다는 사실은 맹상군을 내쳤던 제나라의 민왕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아차 내가 인재를 알아보지 못했구나 하며 깨달은 제나라 민왕은 이제야 맹상군의 진가를 알아차리고, 맹상군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재상의 직위를 복직시키게 하였다. 바로 이것이 두 번째의 굴이 완성된 셈이다.

두 번째의 굴을 파는데 성공한 풍환은 세 번째 굴을 파기 위해 제나랄 민왕을 설득, 채무를 변제하여 백성들을 감격시켰던 현재 산동성 동남쪽에 있는 설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게 만들어 선왕 때부터 전승되어 온 제기(祭器)를 종묘에 바치도록 했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설혹 제왕의 마음이 변심한다 해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략에서였다.

이렇게 재상에 재임된 맹산군은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아니했는데, 이는 모두 풍환의 세 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까닭이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풍환을 『전국책』「제책편」에서는 ‘풍훤’이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불안한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언제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한 준비는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다가올 위기를 미리 예측하고 그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한다면, 어떤 어려움 닥쳐도 무너지지 않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토삼굴’은 백성의 마음을 추스르거나 재난에 대비한 안전 불감증이 만연해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더 이상의 불행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 희 용
경북중학교 운영위원장, 문화평론가, 한국스카우트경기북부연맹 이사, 대진대학교 박사과정 원우회 고문, 전 경기도예총 부회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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