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조(趙)나라에는 패전을 모르는 염파(廉頗)라는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용장이 정승으로 있었다. 그러나 염파의 윗자리에는 문인출신의 인상여(藺相如)라는 인물이 상상(上相)이 되어 조 혜문왕을 보필하고 있었다.
염파는 전쟁도 해보지 않은 인상여가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너무 못마땅하여 공공연히 "나는 생명을 걸고 전쟁에 나가서 장수로서 성을 공격하고 뻬앗은 공로로 정승이 되었다. 그러나 인상여는 세치 혓바닥을 놀려 약간의 공을 세웠는데 나보다 윗자리에 않게 되었으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뇨. 더구나 인상여는 환자령 유현의 집안 살림이나 돌봐주던 미천한 출신이다. 내 어찌 그런 인상여의 밑에서 일을 할 수 있으리요, 언제고 인상여을 만나면 내 반드시 그놈을 쳐 죽이리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염파의 말은 바로 인상여에게 전해졌는데도 인상여는 대응을 않고 참고 피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상여가 외출하던 중 멀리 염파의 행차가 보였다. 그러자 인상여는 수레를 옆 골목으로 몰게 하고 숨어서 기다리다 염파행차가 지나간 다음에야 겨우 큰 길로 나왔다.
이에 인상여의 부하들이 분격하여 "저희들이 고향을 버리고 대감문하에서 있는 것은 대감을 당세의 대장부로 믿고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대감은 염파정승보다도 높은 벼슬에 있지만 염파장군의 버릇없는 말을 누르지 못하고 오히려 겁이나 염파장군을 피해 골목으로 숨기까지 하셨으니 이게 무슨 꼴 입니까. 대감은 왜 이리 겁이 많습니까, 저희들은 창피해서 더 이상 대감을 못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인상여는 그들을 굳이 말리며 "내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 해도 어찌 염파장군을 두려워 피하겠느냐, 지금 외부정세를 볼 때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노리고 있다, 그런데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염파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다,
진나라가 우리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알기만하면 절호의 기회로 알고 즉시 우리 조나라를 칠 것이다. 내가 염파장군을 피하는 것은 개인적 원수보다는 내게는 국가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크게 부끄러워하며 웃옷을 벗고 스스로 벌에 사용하는 가시넝쿨을 지고 인상여의 집으로 찾아가 "이 사람이 너무 미련하고 뜻이 좁아 대감의 너그러운 도량을 몰랐소이다. 이제 죽어도 그 죄를 씻지 못할 것이요" 말하니 인상여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염파를 부축해 일으키며 "우리 두 사람은 다 같이 이 나라 종묘사직을 받드는 신하입니다.장군께서 그 뜻을 알아주시니 오히려 고맙기 한량없거늘 어찌 이렇듯 사죄하시오."
두 사람은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리고 서로를 존경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문경지교 (서로 상대를 위해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친밀한 관계)로까지 발전되어 조나라는 더욱 발전하는 강국이 되니 진나라도 조나라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사사로운 개인감정을 뒤로하고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인상여의 넓고 깊은 지혜와 애국심, 염파의 웅장한 사나이의 가슴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정치권은 졸렬하고 작고 한심해 보인다.
종북세력이 활개 치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등 치열한 남북 경쟁과 국제 경쟁속에서도 싸움질만하는 이 나라 정치권을 보면서 국민은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는데 어찌해야 하는가.
국민에게 약속한 기초단체무공천 약속 번복 등 당장의 자기들의 정치적인 이익만 생각하고 극심한 갈등을 겪고있는 우리나라 정치권에 꼭 필요한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 된다. 이 나라에는 인상여와 염파 같은 큰 인물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아니면 찾지 못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