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동안 가장 큰 상처가 바로 부모님들이 싸우는 모습이 아닐까? 엄마 아빠는 싸움이나 외부에서 오는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어야 할 어른이고 내가 절대적으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인데, 그 어른들이 아이 앞에서 싸우고 힘없는 엄마가 아빠에게 무자비하게 맞는 모습을 힘없이 지켜봐야 하는 아이는 엄마가 맞는 매 못지않게 마음에 멍이 들게 되고, 믿어야 할 대상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 자라게 된다. 나중에 나는 절대 여자를 때리는 저런 어른이 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지만 불행한 것은 어려서 보고 자란 환경 그대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머리로는 폭력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조건 화만 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 술을 마시고 집에 오면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며 집안 물건을 던지고 부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그것을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것은 생각이고 생각을 넘어서 행동으로 나오는 것은 보고 자란 그대로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폭력은 창의적이지 않고 학습되었거나 경험된 것이다. 한 번도 달려 본 적이 없는 소수 민족들에게 달리기를 가르쳤더니 달리면서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만세를 부르듯이 달리는 사람, 팔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몸에 붙이고 달리는 사람, 팔을 그냥 떨어뜨리고 달리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달리기를 경쟁으로 생각하고 늘 달리는 속도에 민감하고 나와 함께 달리는 사람을 이겨야 하는 우리들에게 달리면서 나의 팔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고 배우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도 달려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왜 달리는지, 달리면서 팔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른다. 달려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력도 마찬가지이다. 집에서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된 사람은 부부가 함께 살면서 왜 싸워야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늘 싸우는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큰소리 나지 않고 평안한 생활이 계속될 때 그 평안을 그 행복을 불안해한다.'이렇게 행복하면 안 되는데.. 사람이 살다보면 적당히 싸우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큰 소리도 나야 하는데... ' 라고 생각하게 된다. 학습된 불행이다.
어른은 크게 싸우고도 화해하고 나면 싸움이 준 상처를 치료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술에 너무나 관대한 우리들, 술 먹은 개라고 하면서 술 취해서 하는 행동은 사람이 한 행동으로 보지 않고 너그럽게 봐 주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폭력이나 술은 너그럽게 봐 줄 문제가 아니라 끊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