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선비’ 하면 구닥다리, 학덕(學德)을 갖춘 사람, 어질고 순한 사람, 얌전한 사람, 심지어는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폄하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한 힘은 '선비정신'에 바탕을 둔 선비문화에서 비롯됐다. 중국왕조 평균 수명은 150년인데 비하여 조선왕조는 ‘선비정신’ 덕분에 500여년의 최장수 기록을 세운 것이다.
조선왕조는 절대 군주국가이면서도 선비들간에 언로(言路)가 활발한 나라였다. 임금님께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하다가 귀양도 가고, 또 나중에 임금이 회개하여 다시 그 선비를 중용하는 등 선비문화를 존중하는 사회였다.
조선시대는 제도적으로 삼사(三司)라는 청요직(淸要職)으로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홍문관(弘文館)이 있어 활발한 토론과 소통의 기회도 주어졌고, 비리를 적발하면 탄핵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사간원은 사헌부를 탄핵할 수 있었고, 사헌부도 사간원을 고발할 수 있어 이 두 관청은 맞수였다.
칼자루를 쥔 양쪽이 서로 정면 충돌할 경우에는 중간에서 홍문관이 중재했던 것이다.
홍문관의 수장은 대제학(大提學)이다. ‘삼정승(三政丞)이 불여(不如) 일대제학(一大提學)’이라는 말도 있듯이 조선시대 대제학은 정승보다 더 존경받을 수 있는 선비가 맡는 자리였다. 대제학을 많이 배출한 집안이 A급 양반으로 대접 받았다. 또 서민들에게는 신문고제도를 두어 일반 백성들의 억울함도 듣고 민원을 해결해주는 위민정치(爲民政治)를 했던 것이다.
그러면 대체 ‘선비정신’이란 무엇일까?
“자기 수양 위에서 공동체에 헌신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자세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태도, 인정과 의리,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룬 품격”이라고 본다. 넓게 보고 멀리 보는 지혜로운 생각으로 결국은 “선비정신은 가장 슬기로운 삶의 자세”이다.
요즘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비리를 보면서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선비정신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럴진대,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려면 개개인의 능력보다도 어려서부터 선비정신을 일깨워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비정신을 살려 세계적 인물이 된 좋은 예로,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꼽는다. 김용 총재는 경제학 전공자나 금융 전문가가 아니고, 하버드대에서 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인류학을 택했으며 30년 동안 빈민구호 활동을 하며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오바마 대통령이 삼고초려 끝에 세계은행 총재로 모신 것이다.
김 총재의 어머니(전옥숙 박사, 80)는 50년 동안 퇴계학을 공부한 퇴계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아들에게 줄곧 ‘사람답게 살아라, 헌신과 봉사를 하라’고 선비수업을 시켰다고 한다.
경희대에 재직하고 있는 미국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밖에서 본 선비정신은 지금 시대를 두고 다 위기라고 하며, 미국에선 그 원인을 ‘무책임한 엘리트’에서 찾는데, 과거의 책임 있는 엘리트 전통이 다 사라진 거라며, 한국의 선비정신이야말로 새로운 각성의 촉매이자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엘리트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일본하면 사무라이정신, 영국에는 젠틀맨이 떠오르듯 우리 한국의 선비정신을 국가대표 정신으로 브랜드화(化) 하여, 세계가 탐내는 엘리트 전통으로 부각시켜, IT산업을 비롯한 경제대국이 된 대한민국이 정신문화의 대국으로도 우뚝 세워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