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 농사를 짓던 어머니들이 노래 부르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농번기가 끝난 겨울, 구정을 쇠고 대보름까지가 노는 주기였다, 아버지들은 전방에 모여 술내기, 계란, 국수 삶아먹기 화투를 치고, 어머니들은 번갈아 가며 떡국을 끓였다. 떡국을 먹으러 오라는 것은 그 집에서 한바탕 놀자고 부른 것이다.
그 날, 윗말에 사는 친구의 오빠가 월남전에 갔다가 선물을 사왔다고 하여 구경을 갔다. 유리상자 안에 초록색, 빨간색, 파란색의 원색 드레스를 입은 인형들은 정말 예뻤다. 친구의 자랑에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데 아주머니들께서 몰려오셨다. 그녀의 어머니도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기뻐, 떡국을 끓여 한턱을 내는 날이다. 우리들은 떡국 한 그릇을 얻어먹고 구석에 옹그마니 모여 앉았다. 구경거리가 생겼다.
광목이불 호청을 빨던 커다란 고무(다라)함지에 물을 가득 담아놓고, 뒷간지붕에서 따다 켠 제일 큰 박을 엎어놓았다. 흥이 많고 힘이 좋은 아주머니가 어깨를 들썩이며, ‘아니∼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하늘과 같이∼’ 목청을 높여 창부가로 흥을 돋궜다. 손바닥과 손끝으로 강약장단을 맞춰 물장구를 내리쳤다. 얌전하다 소문난 서울 댁도 흥에 겨워 슬그머니 일어나 엉덩이를 실룩실룩 거린다.
귀에 낯익은 트로트노래가 이어졌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던 때, 개울의 다리를 놓고, 마을길을 넓히고, 마을회관 짓느라 가족 중 한사람은 의례 것 공동부역에 나갔다. 얼른얼른 나오라고 새마을지도자 아저씨는 새벽부터 새마을 노래를 쩌렁쩌렁하게 틀었다.
“어여 인나라, 어여 조반먹구 엄만 부역 나가야 해”
덩달아 목소리가 커진 어머니는 대문 고리에 뭉둥그려진 숟가락을 꽂아놓고 머리에 수건을 쓰며 급히 나가셨다.
“에∼, 에∼∼, 저, 방앗간마당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은 냉밑에 다리 놓는데루 바루 나오시기 바랍니다.”
새마을 노래는 중간에서 뚝 끊기고 얼른 나오라고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삐∼익∼∼하더니 ‘개나리 우물가에 사랑 찾는 개나리처녀∼’ 노래가 들렸다. 스피커는 높은 미루나무 꼭대기에 까치집처럼 앉아 넘말과 점말까지 들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늘어진 버들가지 잡고서 탄식해도 낭군임 아∼니 오고 서∼산에 해 지네.’ 개나리 처녀가 끝나고 찌지직 판 끓는 소리가 난다. 지익직 거리다 ‘한양철리 떠나간들 어이 너를 잊을 소냐∼∼∼∼.’
학교가 가까워지며 노래 소리는 차츰 멀어졌지만 수업을 마치고 마을 어귀에 들어섰을 때는 여전히 울렸다.
“춘향아 우지마라∼ 다알래에여 꺼어엇 어어엇마안∼∼”
꺼어억 꺾어가며 어른마냥 구성지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도 있었다. 부역을 하시는 어른들도 아마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흐르는 땀을 씻어내셨으리라. 그 때 귀가 따갑도록 자주 들었던 노래들이었다.
그러는 중에 넘말 아주머니가 분위기를 바꾸기도 하였다.
“석탄 백탄 타는 데엔 연기만 솔솔 나는데, 이내 가슴 타는데 엔 왜 연기도 김도 안나누나.’ 무슨 한이 그리도 가슴에 쌓였을까. 그러자 ”짜증은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를 받쳐서 무엇 하나~, 위로라도 하듯이 태평가 한 대목으로 받아주었다.
“대보름날엔 풍년들게 윷이나 한판 놀자구요.”
어느새 햇살이 들창문을 비켜가고, 아주머니들께서는 내내 부르던 노래로 합창을 하며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녁 지으러 이집 저집 대문으로 들어가시는 어머니들의 가슴을, 안아주고 달래 주었던 노래들이 언제부터인가 부쩍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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