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자식으로서 부모를 죽이는 자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불효막심한 자들에 대하여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여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 같이 네가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신명기 21장 18절 - 21절)
즉, 부모에게 불효한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느님은 명령하고 계신다. 하느님의 말씀이 이와 같은데 어찌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않을 수 있으며 불효한자들을 처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왕조시대에는 효보다 충성을 더 높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사적인 자료들이 많다. 조선 태종 12년(1412년) 8월에 전사직장(典祀直長)벼슬의 박욱이 역모에 가담한 혐의를 받은 아버지 박계생과 관련해 투옥되었는데 역모의 연좌제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가 3개월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도 감옥으로 아버지를 찾아보지 않았다는 불효한 죄가 그 이유였다.
부친의 역모는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지만 사간원에서는 "불효하고도 충성된 자는 있을 수 없다"며 탄핵한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서도 알 수 있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들은 효와 충의 대립이 아니라 "충신은 효자의 집안에서 구하라"는 말처럼 충과 효의 일체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진(晉)나라 이밀(李密)의 진정표(陳情表)를 읽고서 슬퍼하는 마음이 없으면 효자가 아니며,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를 읽고서 격렬한 마음이 없으면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효와 충의 일체화가 우리민족의 가치관의 핵심이었다.
이밀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는 개가해 버린 상황에서 자신을 양육해준 할머니의 봉양을 위해 벼슬을 사양하는 진정표를 올린 효성스러운 인물이다. 효와 충의 일체화를 위해서는 국왕이 먼저 효의 모범을 보여야 했다.
문종과 인종이 부왕을 극진히 간호하다 병을 얻어 그 병 때문에 요절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할 수 있다. 조선조에서 가장 효성스러운 왕은 정조라 할 수 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 현릉원에 송충이가 많아지자 "네 감히 어디의 솔잎을 갉아 먹느냐"하며 송충이를 씹어 먹어버렸다는 기록이 전해 올 정도이다.
조선시대에는 부모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른 자는 잠시라도 세상을 살게 하는 것이 부끄럽다 하여 속히 처형하여 버리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실행했다.
윤리와 도덕은 주의와 사상과 법을 초월하는 것이다. 불효하고 극악무도한 자들을 엄벌에 처해 국가기강을 세워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