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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수 교수의 힐링 이야기] 사람들이 초록빛 생명으로 깨어나는 지리산 둘레길


공명수 기자 / mskong@daejin.ac.kr입력 : 2013년 10월 09일
↑↑ 공명수 / 대진대 영문학과 교수, 교육대학원장, 포천신문 칼럼위원
ⓒ (주)포천신문사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을 끼고 있는 전북, 경남, 전남 3개도, 남원, 산청, 함양, 하동, 구례 5개시, 21 군, 읍·면 117개 마을들이 함께 이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초록빛 생명으로 깨어나는 길이다. 2008년 봄에 남원 산내에서 함양 휴천을 잇는 시범구간을 시작으로 하여 2012년 5월에 총 274km에 달하는 22개 구간이 완공되었다.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농로길, 마을길들이 환(環)형으로 전북의 남원 구간 46㎞를 지나고 경남의 함양 23㎞, 산청 60㎞, 하동 68㎞를 거쳐 전남 구례 77㎞로 연결되고 있다.

지리산은 안기면 안길수록 아늑하고 포근한 우리네 어머니의 품안 같은 산이다. 지리산은 동화속의 꿈같은 전설을 빚어내면서도 반역의 처절한 피의 메아리도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넓고 깊은 산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리산 둘레길 어느 곳을 따라 걸어도 그 언저리마다 스며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향기에 취하지 않을 수 없다. 화개골 차밭에서 느끼는 농부들의 바쁜 손길, 하늘과 맞닿아 있는 천왕봉과 험난한 계곡과 그곳을 끼고 흐르는 샛강과 섬진강의 도도한 물줄기, 길고 깊은 참나무와 소나무 숲길,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아름다운 임도, 그 어귀마다 오미조밀한 대나무 숲과 그곳을 지나는 아늑한 돌담길 등 지리산 둘레길의 신비한 풍경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인월에서 금계로 이어지는 20km가 넘게 펼쳐지는 3구간에는 끈질긴 생명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상황마을 다랭이 논이 펼쳐진다. 이 다랭이 논 가는 길은 인월교 길을 따라 잠시 촌로들이 누렁소를 몰고 평화롭게 걷는 경사가 없는 둑방길로 이어지지만 그곳을 벗어나 중군마을에 들어서면 가파른 언덕과 임도로 바뀐다. 중군마을을 지나 장항마을에 들어서면 저편에 등구재로 이어지는 험난한 산길을 따라 상황마을의 다랭이 논이 마침내 펼쳐진다.

우리네 조상들이 가파른 산비탈을 곡괭이와 삽으로 깎고 그 자리에 돌을 쌓아 올려 계단식으로 만든 다랭이 논은 쟁기와 소와 사람의 힘든 땀방울이 일궈온 값진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다. 우리는 이 다랭이 길을 끼고 산길을 오르다 보면 등구재 마루에 다다르고 이곳을 지나 차원마을로 발길을 옮기면 지리산 천왕봉과 주능선이 선명하게 한눈에 들어오면서 어느덧 전라도를 지나 경상도를 접하게 된다.

제3구간 못지않게 하동읍에서 서당마을을 잇는 제12 코스도 사람의 냄새가 가시지 않는 곳이다. 남쪽으로 고전면, 북쪽으로 악양면, 동쪽으로 적량면, 그리고 서쪽으로 섬진강을 경계로 광양시 다압면과 만나는 정겨운 농로 길에는 참깨,·들깨,·무우,·배추,·우엉,·토란이 넘실거리는 들판과 더불어 사람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난다. 봄에는 꽃동산, 여름이면 초록 들판,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들이 걷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특히 밥알 같은 흰 꽃이 피는 수령이 약 350년이나 되는 우계리의 보호수 이팝나무는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던 며느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무덤에서 흰색 꽃으로 피어나는 나무로 자라났다는 이야기에다 가난한 선비가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위하여 쌀밥 대신 이팝나무 꽃을 따다 어머니의 밥그릇에 올려 이에 감동한 왕이 상을 내렸다는 얘기까지 갖가지 전설을 전하고 있다. 여기에 이 당산나무는 임진왜란 때 흉년과 전쟁으로 의복과 식량이 없어 고생할 때 이곳 이팝나무의 나뭇가지에 옷과 밥이 열렸다는 전설도 함께 전하고 있다.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대출마을에서 부촌리 원부촌 마을을 연결하는 9.1km의 13코스 길은 문객들의 혼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만다. 이 길은 아름다운 섬진강을 배경으로 악양천 강둑길을 지나 입석마을 보호수인 푸조나무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서어나무 숲길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문객들은 악양 마을이 자랑하는 매실, 감, 배 등의 과실수의 정겨운 정취는 말할 것도 없고 한 폭의 수채화 마냥 누렇게 익어가는 박경리 『토지』의 배경인 최 참판 댁 평사리 들판과 훤칠하게 마주보고 서있는 ‘용이와 월선 소나무’에 마음껏 취하고 만다.

또한 여기서 전남 구례군 송정마을과 오미마을을 잇는 지리산 둘레길 16코스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한민국의 3대 명당이라 일컬어지는 오미마을의 ‘운조루 가는 길’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선녀가 낀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모습을 원형 그대로 간직한 곡전재와 더불어 운조루는 배산임수형의 전통적인 양반가옥의 자태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 길에서 발길을 조금 더 옮겨가면 ‘이순신 벽의종군로’와 정유재란 때 구례에서 의병이 일어나 왜군과 혈전을 벌였던 피로 붉게 물들은 ’피내‘ 하천과 이곳을 따라 이어지는 칠의사 계곡인 석주곡과 칠의사를 모셔둔 석주관을 만난다.

이처럼 지리산 둘레길은 산과 강과 사람의 정취를 품고 있어 다른 어느 길보다 사람과의 교감이 깊은 길이다. 지리산이 깊고 넓은 품안만큼이나 제각기 다른 사람들의 향기와 말소리와 음식 맛에 담긴 독특한 생활양식과 문화를 안고 있기에 지리산 둘레길은 사람과 자연의 정취가 가장 깊게 배어 있는 길이다. 어쩌면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이 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 간직한 사람의 향기와 정취가 숨 쉬고 있는 초록빛 생명의 길과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지리산 산자락을 따라 만나는 정겨운 마을 풍경과 그 속에 깃든 역사와 문화와 사람 이야기는 영원한 생명의 소리로 간직되고 있다.

공명수 / 대진대 영문학과 교수, 교육대학원장, 포천신문 칼럼위원
공명수 기자 / mskong@daejin.ac.kr입력 : 2013년 10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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