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본명 홍영후)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져 올해로 46회를 맞이하는 ‘난파음악상’에 대해 최근에는 선정자들이 수상을 거부 하고 있어 오랜 세월 이어온 권위 있는 예술상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고, 수상자를 이사회가 직접 추천하여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어 급기야는 기념사업회가 금년에는 수상자 선정을 하지 않겠다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내용을 알아보면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된 작곡가 류재준씨가 홍난파의 친일경력 등을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으며, 재선정된 소프라노 임선혜씨도 잇달아 상을 받지 않겠다고 하여 음악가 홍난파의 친일행적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작곡가 류재준씨는 친일파 음악인 이름으로 상을 받기도 싫고, 이제껏 수상했던 분들 중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난파음악상의 공정성과 도덕성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고, 임선혜씨는 부정적으로 이슈화된 상에 이름을 올리기 싫다며 수상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렇게 문제가 된 이유는 홍난파의 마지막 행적인데, 춘원 이광수가 가사를 쓰고 홍난파가 작곡했던 ‘희망의 아침’이라는 노래는 일제의 지원병에 앞장서 나갈 것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특별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홍난파의 음악적 생애 전반을 조명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고, 친일한 행적이 식민지 시대 다른 음악가에 비해 강도가 낮을 편이라고 주장하며, 그의 친일에 대한 언급은 좀 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친일예술가를 기념하는 사업에 대한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다.
이렇게 논란에 휩싸이자 선정위원회는 좋은 음악인을 뽑아서 난파선생을 기념하려는 상이 친일 등이 거론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수상자를 낼 필요는 없으므로, 공정성에 대한 시비도 일어났으니 제도적 보완을 통해 내년에 다시 수상자를 선정하겠다고 조심스런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친일행적이 있는 인물을 기념하는 상은 지자체들이 점차 사업을 확대하면서, 자기지역의 인물을 경쟁하듯 선양하는 사업으로 추진이 이어져서, 웬만큼 이름이 난 인물이라면 앞을 다투어 상품화 하거나 단체장의 업적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우리지역에서도 근래에 동농 이해조를 기념하는 ‘이해조 문학상’을 만들어 시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데, 정도의 강도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동농 이해조의 만년의 친일 행적도 홍난파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세한 조명과 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 이유는 우리지역에도 일제의 만행에 항거하며 일가친척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펼쳤던 분들이 존재하고 있고, 아직도 애국지사를 선양하는 사업은 한 번도 진행하지 못했는데, 친일행적이 드러나는데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유족의 사과나 유감표명도 없이 독립운동가보다 먼저 업적을 선양하려고 한다면, 긴 세월이 흘러도 그 의미는 퇴색할 수 있다는 것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농 이해조에 대해서 1986년 10월에 최원식 교수가 발표한 한국근대소설사론 28-29쪽에 있는 친일 행적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이해조는 일제와 타협의 길을 택하여 총독부 어용지 매일신보에 입사했고, 1919년 11월 경무국 정보위원 오오가끼와 중추원 참의 어윤적이 중심이 되어 발기한 친일 유생단체인 ‘대동사문회’에 관여 했다.
그리고 1920년 1월에 조직된 친일 유생단체 유도진흥회(儒道振興會)의 기관지인 ‘유도(儒道)’ 창간호(1921. 2)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글은 발표하였고, 그 발(跋)문에 25인 편집위원의 명단에 동농 이해조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친일파로 알려진 어윤적 등과 함께 애국유생을 회유하던 친일단체에 이름을 올린 이해조의 만년행적에 친일이라는 씻기 어려운 오점을 남겼다.
한편 이무렵 대한제국의 국권을 상실된 것을 애통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 구국의 만주로 상해로 떠나 독립군으로 광복군으로 목숨 걸고 투쟁했던 선구자들과 비교할 때, 일제와 타협하여 항일 민족유림의 정신과 배치되는 일에 참여했던 동농의 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는 기념사업 자체가 의미를 잃는 것이다.
얼마 전 포천문화원은 동농 이해조를 이달의 문화인물로 추천하였다가 부적격 판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친일행적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애국유림들의 활동을 방해한 단체에 참여했던 동농 이해조의 행적은 더 깊이 검증한 뒤에, 그래도 가치가 있다면 시민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문학적 의미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친일 행적이 부끄러워 선정자들이 수상을 거부하고 있는 ‘난파 음악상’을 반면교사로 삼아, 인물에 대한 검증도 없이 업적을 찬양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