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유서 깊은 명승과 산수대천을 찾아가는 유람은 삶의 활력소 이상으로 의미 있는 정신적 가치를 지녔다. 삼국유사와 같은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화랑도들은 명산대천을 순례하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가운데 산천에 제사를 올리면서 국가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특히 화랑도의 오계(五戒)는 유오산천(遊娛山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오계 중에서 “믿음으로서 벗을 사귀고” “싸움에 나가 물러나지 않으며”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는 세 가지 계율은 화랑도들이 아름다운 산과 물에서 노닐고 즐기면서 자연사랑 국토사랑 나라사랑을 체득하는 정신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들이 국토의 명승지를 함께 순례하면서 서로 함께 협력하여 낙오자가 나오지 않게 함으로써 강인한 신체에 굳은 믿음과 강건한 정신을 길렀기 때문이다. 해파랑길은 동해안을 따라 걷는 총 50개 코스에 770㎞ 길이의 국내 최장거리 여행길이다. 해파랑길의 유래를 살펴보면 6세기 중엽 신라 진흥왕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파랑길은 이미 1500년 전인 신라시대부터 화랑들이 유오산수하며 심신수련과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금강산으로 향했던 걷기순례길 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계속 이어졌고,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시를 짓고 그림을 남겼다. 이렇게 역사적 의미를 깊이 간직한 국토순례길이 일본의 식민지배로 그 맥이 잠시 끊어졌지만 최근에 와서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해파랑길을 2009년에 처음 기획해 동해안의 19개 기초자치단체와 사단법인 ‘한국의 길과 문화’와 함께 5개년 계획으로 본격적인 조성에 들어가 2014년 12월에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길은 1차노선이 688㎞이었으나 2회에 걸친 후속 현장탐사를 거친 후 770㎞로 조정되었다.
송강 정철은 1580년 강원도 관찰사로 제수되어 속초, 양양, 강릉, 삼척을 거쳐 경북 울진까지 이어지는 관동 8경이 있는 동해안을 유람하면서 가사문학인 ‘관동별곡’을 남겼다. 해파랑길은 문무왕과 수중릉에 얽힌 전설의 유적지들을 포함하여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노래한 관동팔경의 경승지 여섯 곳에다 동해안의 작은 포구와 마을들을 연결하는 해안길과 내륙의 숲길 등을 엮어 내고 있다.
‘해파랑길’의 이름은 떠오르는 해(太陽)와 파란 바다(海), 그리고 파도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 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길의 뜻을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그리고 ‘~와 함께’ 라는 조사의 ‘랑’ 이 합쳐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해파랑길에서는 동해의 아침, 화랑의 순례, 관동팔경, 통일 기원의 4 가지 큰 의미에다 각각의 세부구간이 지닌 지역, 길이, 소테마, 핵심거점에 따라 색다른 묘미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사실 해파랑길은 부산광역시 오륙도에서 출발해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 해변, 숲, 마을, 해안도로 등을 끊이지 않게 선형으로 잇는 국내 최장 탐방로인 셈이다.
이미 알려진 해파랑길의 베스트 5코스는 1)동해아침을 즐길 수 있는 부산의 오륙도-송정해수욕장 24km, 2)화랑과 삼국유사의 유래를 음미하는 경북 경주 포항의 경주 봉길 해수욕장-포항 양포항 23km, 3)영덕 블루코드의 푸른 바다를 만끽하는 경북 영덕의 강구항-고래불해수욕장 41km, 4)석호를 누리는 강원 강릉 양양의 강릉항-양양 광진리 해수욕장 27km, 5) 통일을 염원하는 강원 고성의 송지호--화진포 28km 등이다.
하지만 해파랑길 중에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맞이하는 붉은 태양, 임진왜란 때 기생 두 명이 술에 취한 왜장을 끌어안고 벼랑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에서 이름을 얻은 이기대(二妓臺)길, APEC 정상회담이 열린 곳으로 유명한 동백섬 둘레길, 고려시대 나옹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관음도량으로 유명한 해동용궁사, 고려 태조 왕건이 안동 부근에서 후백제군을 물리칠 때 예주(지금의 영해면)의 호족들이 참전해 준 것을 감사히 여겨 순시할 때 영덕의 경정2리(차유마을)에서 수라상으로 받았다는 영덕대게와 그것을 기리는 공원길, 설악 일출 8경의 하나로 기암절벽 위에 아담하게 세워져 있는 청간정, 양통집이라는 독특한 구조의 전통가인 고성의 왕곡마을 등에서 즐기는 유오산천이 단연 압권이다.
특히 고성 왕곡마을은 100년 가까이 된 기와집 20여 채와 초가집 30여 채가 모여 있는 집성촌이다. 왕곡마을은 1988년 전국 최초로 전통 마을 보존 지구로 지정되었고, 고려 말에 함부열이 조선의 건국에 반대하여 은거한데서 비롯되며, 임진왜란으로 폐허화된 후 150여 년에 걸쳐 형성된 마을이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사이 산길, 해안 길, 강길, 그리고 옛 사람들의 자취가 흐르는 역사의 길을 걸어왔다. 우리가 쓸쓸한 고독 속에서 유유자적하면서 홀로 또는 여럿이 걸으며 깨닫는 것은 길 위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걷는 길이 “비우면 채워지고 버리면 다가오는 값진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산수의 풍광에 취해 일상에 갇혀 있던 아집과 집착을 버리고 눈과 귀와 가슴을 활짝 열고 유오산천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