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왕이 행차하는 곳에는 언제나 사관(史官) 2명이 동행했다. 사관 한 명은 왕과 신하간의 오가는 모든 대화와 토론, 잡담 등 모든 말을 기록했고 다른 한 명은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 왕의 얼굴 표정까지 기록했다. 이렇게 수집한 사초(史草)를 토대로 왕이 죽은 뒤에 실록을 편찬했다.
왕에게도 열람을 금지했기 때문에 왕의 실정과 비행까지 낱낱이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각종사화(士禍)의 빌미가 되었고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기록이 왜곡되었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조선왕조실록은 ‘근대 이전 우리민족만큼 통치 자료를 철저하게 남긴 나라는 지구상에 없고, 가히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의 역사를 1,707권에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적인 기록문화유산이 되었다. 그러나 왕조실록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현대의 대통령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으로 올라오는 모든 건의문과 왕의 치사문을 기록한 승정원일기, 왕의 하루하루의 일기인 일성록, 왕실의 행사기록인 의궤 등에는 임금의 모든 행위가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서양은 어떠한가,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민족보다 역사는 매우 짧으나 1940년 프랭클린 D 루즈벨트대통령 도서관이 처음 문을 연 이래 대통령도서관법(1955년)과 대통령기록관리법(1978년)이 제정되면서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보존한다는 원칙이 세워졌다.
텍사스 오스틴의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기념도서관에는 대통령 재직시절의 각종자료와 기록은 물론이고 극히 사적인 약속스케줄 쪽지까지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자료들 속에서 자료연구가들은 존슨 대통령에게 수십 년 간 비밀로 사귀어온 숨겨진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도 찾아낼 수 있었다.
존슨 대통령은 재임시절 흑인 인권신장에 많은 노력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통령에서 물러난 20년이 지난 후 공개된 그의 녹음자료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니그로(흑인들을 비하 해 부르는 표현) x x들이 그럴 수 있느냐”고 하면서 화를 낸 대목이 들어 있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부정과 비리에 관련된 기록도 예외 일 수는 없다. 보관문서에는 보고서나 비망록은 물론 메모지에 담긴 한두 마디의 전화메모나 낙서, 각종편지까지 포함된다고 한다. 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이 헌법이나 법령에 의해 행한 모든 정책행위에 관한 기록도 정부소유로 전환되었고, 도서관 사서들이 퇴임대통령을 만나 후속 취재한 기록도 추가 되었다고 한다.
하버드대 도서관에는 1907년 청년 이승만이 하버드대학에 입학을 문의한 편지가 보관되어 있고 프린스턴대도서관에도 학생 이승만이 돈이 없어 박사학위증명서 발급을 받지 못한 것을 안 지도교수가 총장에게 수수료 면제를 요청한 메모지까지도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