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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수의 힐링 이야기=4] 일본 시코쿠 길에서 만난 새로운 인생


공명수 기자 / mskong@daejin.ac.kr입력 : 2013년 08월 18일
↑↑ 공명수 대진대 영문학과 교수, 교육대학원장, 포천신문 칼럼위원
ⓒ (주)포천신문사
오늘날 현대인들은 모두가 겉모습이 제 아무리 멀쩡해 보여도 마음속에 말 못할 고민 하나쯤은 안고 살아간다. 이들은 알 수 없는 사연과 싸우면서 끝없이 허우적거릴 경우가 종종 있는 반면 한 순간에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탄탄한 내면을 다시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행길 같은 곳에서 느리지만 좀 더 충실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마냥 슬프지만 않은 인생 얘기를 접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현재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최고의 힐링 길로는 일본의 시코쿠 순례길이 아닌가 싶다. 일명 오핸로 길로 통하는 시코쿠 순례길은 그 섬 1,400km에 걸쳐 88개의 사찰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 코스다. 이곳은 성인이 하루에 25km를 걷는다고 가정한다면 한 달 보름 이상을 걸어야 하는 긴 여정 길이다. 이 길은 서기 800년경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 코보대사(홍법대사)가 수행을 행한 깨달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순례길이다.

여행자들이 빨간 화살표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1번부터 88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사찰을 차례로 걸어가며 88곳 모두를 끝마치면 순례 인증서를 받게 되고 소원 한 가지를 빌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코쿠 순례길은 종교적 깨달음의 차원을 떠나 길을 걸으며 성찰하고 자기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찾는 세계적인 치유의 길로 자리 잡았다.

시코쿠는 일본 열도 네 개의 큰 섬 중 가장 작은 섬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일본의 고관들이 귀양을 많이 갔던 변방에 위치해 있는 섬이자 평야가 적고 태풍이 빈번해 농업이 거의 불가능한 불모의 땅이었다. 과거 이곳 사람들은 생존 때문에 왜구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슬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 여정의 길을 따라 가다보면, 여행객들은 다리를 다친 백로가 온천물에 발을 담근 후 말끔히 치료되었다는 전설로 시작된 1500년 역사의 일본 최고의 도고온천, 한적한 길가에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우동집, 낡은 돌다리 아래 흐르는 맑은 시냇물, 골목길 어귀마다 자리 잡고 있는 자그마한 사당과 위패당, 그리고 그 길에서 따뜻한 시코쿠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들을 만난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시코쿠 순례길에서 경험하는 최고의 힐링은 우리말로 ‘대접’의 의미가 담긴 오셋다이(お接待)이다. 시코쿠 사람들은 “당장 순례를 할 수 없는 나를 대신해 순례를 해 달라”는 뜻으로 국적과 상관없이 순례자들에게 따뜻한 친절을 베푼다. 이들은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장바구니를 열어 먹을 것을 주며 격려하기도 하고, 쉼터를 마련해 주기도 하고, 여행비를 주기도 하고, 또한 집으로 초대해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식들에게 이러한 오셋다이 전통을 자랑스럽게 알려주기도 한다. 이들이 이렇게 서로를 격려하는 오셋다이 풍습은 시코쿠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큰 힘을 준다.

또한 무료 숙박소들도 오셋다이의 전통에서 비롯되고 있다. 시코쿠 순례길 전역에 걸쳐 골고루 퍼져 있는 사찰이 제공하는 무료 숙박소 '츠야도'나 개인이 자신의 집이나 창고를 숙소로 제공하는 '젠코야도'가 대표적이다. 이곳 여행자들 대다수는 이러한 오셋다이의 따뜻한 접대를 받는 과정에서 마음의 진정한 변화를 겪는다. 이들은 여행 초반 이곳 현지인들의 알 수 없는 친절에 잠시 당황하기도 하지만 여정이 무르익을수록 고마운 마음으로 공손히 오셋다이의 접대를 받게 되고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러 자기성찰을 이룬다. 이런 점에서 오셋다이 전통은 고통을 삼키며 힘들게 걷는 순례자들에게 진정한 치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시코쿠 순례길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의 얘기들은 몇 년 전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워커즈」(ウォ–カ–ズ, 迷子の大人たち)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이 드라마에 따르면, 현재 시코쿠 순례길을 걷고 있는 서른 두 살의 한 여성은 남자한테 이용당해 모아둔 돈도 한 푼 없고 직장도 없다. 그녀는 지금 이 길을 걷고 있지만 인생의 방향을 잃은 상태에서 자신이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른 채 이 여행이 끝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런 계획도 없다. 이 여성은 오로지 도쿄로 돌아가는 것이 싫을 뿐이다.

그런데 이 여성은 여행 도중 여행자를 위해 무료 숙식을 제공하는 한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고 자신 같은 낯선 사람에게 선뜻 숙식을 제공하는 이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감동을 받는다. 그 아주머니가 여러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오셋다이를 베푼다고 하지만 이 아주머니에겐 젊은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아픈 사연이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인생의 방향을 잃고 힘겨워 하는 이 여성은 이 아주머니를 통해 다시 한 번 새로운 인생을 만난다. 그녀는 힘든 여정이지만 마음의 상처를 극복할 기운을 다시 얻어 남은 여정을 시작하는 반면 이 아주머니는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시코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여행길에서 잊고 싶은 기억을 짊어진 여행자들을 만나 국적과 계급과 성별과 빈부의 벽을 뛰어 넘어 서로 새로운 인생을 공유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이들은 함께 걷는 과정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정겨운 공감의 시간을 나눈다. 이들은 이 여행길에서 어느 누구든 고통 없는 삶이 없다는 인생역정을 새삼 깨달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조금 더 단련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걷고 또 걸어보자. 길에서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공명수 / 대진대 영문학과 교수, 교육대학원장, 포천신문 칼럼위원
공명수 기자 / mskong@daejin.ac.kr입력 : 2013년 0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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